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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ria Dec 20. 2023

[3] 따스한 런던의 아침 그리고 버킹엄궁전

런던여행기




동틀 무렵, 런더너들이 하루를 이제 갓 시작할 시간에 나는 런던에 도착했다.


멋이라곤 하나도 없는 회백색의 평범한 공항일 뿐인데 사방팔방 눈 씻고 찾아봐도 한글이나 한국인은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는 이 공간이 나의 마음을 한껏 들뜨게 했다. 모든 것이 새롭고 낯선 공간에 놓인 나는 기대감과 긴장감으로 부풀어 콩닥콩닥 뛰는 가슴 위에 지그시 손을 얹고 이 찰나의 순간을 만끽해 보았다. 얼마 만에 오는 외국인가. 유행병이 돌기 시작한 때가 2019년 12월이었고 그 해 가을에 해외를 다녀왔으니 약 4년 만이지 아마. 감격스럽다.


공항에 오자마자 가장 먼저 유심칩을 구매했다. 사실 런던에 있는 동안만큼이라도 본래의 일상으로부터 완전히 격리되고 싶었기에 이것을 구매할까 말까 꽤 고민했지만 아무래도 각종 장소들을 찾아가려면 지도 앱이 반드시 필요했으므로 결국 유심칩을 구매하기로 마음먹었다. 고로 나는 일상으로부터의 완벽한 격리에 실패했다고 할 수 있겠다. 하하

특이하게도 이곳은 공항 내 편의점에서 유심칩을 판매하고 있었는데, 유심 브랜드 및 용량이 다양하여 이들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묻고자 계산대 직원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그녀는 매우 독특한 (아마도 영국으로 이주한 외국인인 듯하다) 억양을 지니고 있었고, 나는 이를 온전히 알아듣는데 꽤 어려움을 느꼈다. 이 광경을 옆에서 지켜보던 (아마도 영국인) 손님이 그녀의 말을 내게 반복하여 전해주었다. 그제야 나는 그녀의 설명을 이해할 수 있었고, 절반도 쓰지 못할 것이 뻔한 30GB짜리 과분한 용량의 유심을 구매했다. 한화로 무려 5만원이 넘는 가격이었지만 이것이 이 가판대 위에선 제일 저렴한 용량의 것이었다. 어쨌든 친절한 런던 신사의 도움으로 무사히 유심 구입을 마쳤다.


나는 테임즈링크*를 타러 가는 길을 찾지 못해 또 한 번 다른 ‘신사’에게 도움을 받았는데, 아니 이 아침에 어쩜 이리도 다들 친절한 것인지! 최근에 고갈되었던 인류애가 여행을 통해 다시 충전되는 듯했다.

*테임즈링크(Thameslink) : 영국 내 열차의 일종.


출퇴근 시간대여서 그런지 열차 안은 만원이었다. 짐이 가득 들어차 터질 것 같은 커다란 배낭을 멘 어깨가 금방이라도 탈골될 것처럼 욱신거렸다. 매우 불편하기 그지없는 상태였지만 차창 너머로 보이는 이국의 풍경은 육체적 고통도 잊고 나를 설레게 하기에 충분했다. 뿐만 아니라 아침의 상앗빛 눈부신 햇살은 이 모든 풍경에 ‘낭만’이라는 심상을 부여했다.

햄버거 사이에 낀 고기패티처럼 짓눌리고 있는 상태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둘러싼 이 모든 광경들에 가슴이 콩닥콩닥 두근거렸다.


약 40여분을 달린 끝에 드디어 목적지 역에 내렸고 비로소 진정한 바깥공기를 들이마실 수 있었다. 다행히 런던의 날씨는 구름 한 점 없이 매우 맑았으며 아침 햇살은 나뭇잎 사이로 아름답게 반짝이고 있었다. 이 아름다운 순간의 유일한 옥에 티라고 할 수 있는 무거운 짐가방을 어서 벗어던지기 위해서 숙소로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숙소로 가는 길. 12월인데도 마치 가을같다.



체크인을 마친 뒤, 장거리 비행을 위해 입었던 트레이닝복에서 단정한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아직 아침의 낭만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런던 거리로 뛰쳐나왔다. (입실 가능한 시간은 아니라서 짐만 맡기고 옷만 갈아입었다) 아주 오래도록 세면을 하지 못해 꽤 누추한 몰골이었지만 아무렴 어떤가! 이곳에선 아무도 날 모르는 걸. 서울에선 어디서건 나를 알아보는 눈이 너무 많아 불편한 순간이 많았는데 이곳에선 그런 불편함을 느낄 필요가 없으니 참 좋다.


새삼 또 떠오르는 유명한 짤. (예능방송 '라디오스타'에서 류승수 배우가 한 말)



버킹엄 궁전을 둘러보기 위해 튜브(:지하철)를 타고 그린파크 역에서 내렸다. 사람들이 햇살 아래 촉촉이 젖은 오솔길 위를 산책하고 있는 그린파크를 가로질러 버킹엄 궁전 쪽으로 향했다. 근위병 교대식이 어디서 진행되고 있는지 누군가에게 물어보지 않아도 저편에 가득 몰려있는 인파는 그 위치를 친절히 안내해주고 있었다. 근위병 교대 장면은 사람들에게 가려져 볼 수 없었지만 이어지는 근위병의 행진은 무리 없이 볼 수 있었다. 나도 사람들 틈에 끼어서 한차례 행진을 보고 궁전 외부의 사진을 몇 장 찍었다. 사실 근위병의 행진 장면은 크게 인상 깊지 않았으나 근위병 무리 앞 뒤를 걷는 말들의 상태가 아주 좋아 넋 놓고 말을 구경했다. 두툼하게 잘 잡힌 근육과 윤기 나는 털이 궁전 앞 조형물의 금빛 장식에 반사된 햇살을 받아 더욱 찬란함을 뽐냈다. 빅토리아 메모리얼 동상을 포함하여 온통 금빛으로 찬란한 이 모든 아름다운 장식 요소들은 우리나라의 궁전과는 또 다른 매력을 지녔다. 맑은 날 정오의 버킹엄 궁전 외부 풍경에 감탄이 절로 나오는 와중에 나의 지친 뇌는 카페인을 간절히 부르짖고 있었다. 이 녀석을 달래기 위해 나는 런던의 첫 방문 장소인 버킹엄궁전을 싱겁게 뒤로 하고 커피숍을 찾아 나섰다.






버킹엄궁전 가는 길에 놓여있는 그린파크. 이외에도 런던에는 멋진 공원들이 매우 많다.

*가장 우측 사진에 저 멀리 교대식을 보기 위해 모여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보일 텐데, 가까이 다가가면 안 쪽에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있다. 사실상 교대 장면은 웬만큼 일찍 가 있지 않고서는 제대로 보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교대식을 보지 못한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는 없다. 교대 후에 궁전 앞 원형광장을 따라 쭉 행진하기 때문에 행진 장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전반적인 분위기나 양식을 살피는데 충분할 것이다. 교대식은 이를 촬영한 좋은 영상들이 유튜브에 많다.


정오의 햇살을 받아 금빛 조형물들이 눈부시게 빛났다. 저 황금 동상은 Victoria Memorial 동상이다.


동상 머리 위에 새가 앉은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이런 걸 보면 괜히 웃음이 난다.


번쩍번쩍 영롱하게 빛나는 Victoria Memorial 동상. 혼자 여행이어도 행인들에게 야무지게 부탁해서 내 사진도 잘 남겼다.


근위병들이 교대식을 거행한 후 궁전 앞을 행진하여 지나간다. 이 광경은 어렵지 않게 관람할 수 있으니 교대 장면을 놓치더라도 전혀 실망할 필요 없다!



*버킹엄궁전 (Buckingham Palace)

: 영국의 런던 웨스트민스터에 있는 영국 왕실의 관저이자 국빈을 맞이하는 공식적인 장소이다. 버킹엄 궁전 앞에서는 근위병 교대식이 개최되며, 매일 이뤄지지는 않으니 미리 웹사이트를 통해 분명하게 확인하고 가는 것이 좋다. 교대식은 대개 오전 11시쯤 시작된다.

이곳은 본래 1703년에 버킹엄 공작의 개인 저택으로 지어졌으나, 1761년 조지 3세에게 양도되어 증개축을 거쳐 사저로 이용되었고, 그 후 1837년 빅토리아 여왕의 즉위식 때에 궁전으로 격상되어 이후 역대 군주들이 상주하였다.


(※버킹엄궁전 방문 시 참고할 만한 공식웹사이트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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