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여행기
어서 빨리 이곳 홍차오공항에서 푸동공항으로 이동해야 하지만 내가 서 있는 이곳이 당최 어딘지도 모르겠고, 와이파이는 먹통이고, 한밤중이라 지하철도 끊긴 데다가 공항직원 그 누구와도 소통이 되지 않는 이 당혹스러운 상황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까....
밤비행기로 도착하여 피곤함에 넋이 나간 눈빛으로 택시를 잡아 떠나는 많은 중국인들 틈에서 어딘가 묘하게 한국의 향기를 풍기는 낯선 여자를 발견하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녀를 무작정 붙잡았다. 그녀는 중국인이지만 다행히 한국어를 할 줄 알았다. 그야말로 너른 풀밭에서 네잎클로버를 발견한 기분이었는데, 그녀는 정말로 내게 행운의 네잎클로버와 같은 존재였다.
그녀에게 간단히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그녀는 나 대신 택시를 잡아주겠다고 하였다. 하지만 현지인인 그녀에게도 카오스와 같은 공항에서 택시를 잡는 일이란 쉽지 않았다. 그녀는 잠시 고민하더니 큰 결심을 내린 듯 비장하게 주차장에 있는 자기 차로 가자고 말했다.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공항 밖 대로변으로 나가 택시를 잡는 편이 나을 것이라는 이유였다. 우리 엄마가 알면 너는 겁도 없느냐며 대로하셨을 테지만 당시의 나로선 그녀의 자가용에 기꺼이 타는 것보다 나은 방법이 없어 보였다. 나에게 ‘비행기를 놓치는 일’이란 ‘공들여 계획한 여행 일정이 틀어지는 일’을 의미했다. 내가 계획한 다음 일정이 틀어지는 일은 상상하기도 싫은 변수였기에 나는 무조건 그 비행기를 성공적으로 타야 했다. 무엇보다, 그녀는 결코 내게 해를 입힐 사람이 아닌 것 같다고, 내 인생의 빅 데이터 결정체인 ‘촉’이 말해줬다.
그녀의 차를 타고 간단한 대화를 주고받으며 공항 인근으로 이동했다. 야심한 시각이어서 그런지 대로변에는 택시가 도통 보이지 않았고 그녀는 추운 밤 도로 위에서 나의 택시를 잡아주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그런 그녀에게 어찌나 미안하고 고맙던지… 무언가 답례를 하고 싶었지만 감사의 의미랍시고 섣불리 현찰을 건넸다가는 선의를 베푼 상대에게 자칫 불쾌감을 줄 수도 있을 것 같고, 가방 안에 가볍게 선물할 만한 스낵이나 물건 같은 것도 없었다. 그녀에게 물질적으로 보답할 적절한 방법이 없으니 미안함과 고마움의 감정은 더욱 증폭되었다. 눈덩이처럼 마구 불어나는 그 마음을 담아 연신 고맙다 말하는 내게 그녀는, 이전에 한국에서 유학 생활을 하며 한국인들로부터 도움을 받은 일이 많았고 그때의 고마움을 되새기며 그녀 또한 이렇게 나를 돕고 있는 것이니 나 역시 훗날 도움이 필요한 외국인을 만났을 때 꼭 도와주라고, 그러면 된다고 이야기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선순환의 현상인가!
그녀로부터 전해 받은 이 온기를 잘 쥐고 있다가 훗날 언젠가 그 온기가 필요한 외국인에게 꼭 전해 주리라고 굳게 다짐했다. p.s. 절 도와주신 당신은 정말 복 받으실 거예요.
그녀 덕분에 가까스로 잡은 택시에 올라탄 나는 짧디 짧은 중국어로 택시기사에게 목적지를 전했다.
(나) “실례합니다만 저는 시간이 별로 없어요. 나는 다음 비행기를 타야 해요. 나는 푸동 공항 제1 터미널에 신속히 가야 해요. 부탁합니다.”
형편없기는 했지만 어쨌든 단어가 아닌 문장으로 말을 하니 택시 기사는 내가 중국어를 하는 사람인 줄 알고 속사포로 중국어 대답을 늘어놓았다. 내가 손사래를 치며 중국어를 못 한다고 하자 그 기사는 자연스럽게 곧바로 번역 앱을 켜서 나와 소통을 시도했다. 처음엔 그저 행선지 및 시간에 관해서 묻기 위함인 줄 알았는데 그는 계속해서 그 번역앱을 이용해 나와의 잡담을 이어나갔다. 공항까지 한 시간이 조금 안 되는, 나름 장거리 이동이었으니 아마도 승객의 지루함을 덜어주고자 신경 쓴 행동이었으리라 짐작한다. 한국어도, 영어도 전혀 하지 못 하는 택시기사가 번역 앱을 들고 외국인 승객인 나와 열심히 소통을 이어나가고자 노력하는 그 마음이 매우 따뜻했다.
(나) “나는 상하이에 난생처음 왔어요. 상하이 사람들 모두가 정말 친절해서 나는 감동받았어요.”
그러자 그는 내게 이렇게 대답하며 미소 지었다.
(택시기사) “중국과 한국은 지리적으로 가까워요. 그러니까 우리는 서로 먼 친척이나 다름없어요.”
방금 전까지만 해도 스스로를 겨울 숲속의 길 잃은 새와 같다고 여겼던 나의 언 가슴을 따뜻하게 녹여주는 그의 대답이었다. 이 친절하고 세심한 택시기사에게 택시비를 지불하며 팁을 함께 건네는 것으로써 나의 고마운 마음을 조금이나마 표현하였다.
사실 나의 경유 비행 편은 도박에 가까우리만치 제시간에 대기에 아슬아슬한 스케줄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다행히 한국에서 정시에 비행기가 이륙했고, 상하이에 내려서는 다정하고 친절한 상하이 시민들 덕분에 신속하고 무사히 연결 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넷상에선 사람들이 서로 반한이니 반중이니 하며 싸워대지만 현실에선 이와 같이 선량한 문화인들이 서로서로 도우며 살아가고 있음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홍차오공항에서 만난 은인들 덕분에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푸동공항에 도착하였고, 의도찮게 꽤 긴 대기시간을 갖게 되었다. 자정을 남긴 야심한 새벽이어서 공항 출국장은 불 켜진 상점 하나 없이 고요하였다. 앞서 언급한 바 있듯 중국 상하이의 공항 와이파이는 있으나 마나 한 아주 형편없는 존재였기에 가족들을 비롯하여 어느 누구와도 온라인소통을 시도할 수 없었다. 혹시라도 런던행 장거리 비행 동안 잠을 이루지 못할까 봐 미리 수면 부족 상태를 만들어뒀더니 쏟아지는 졸음을 참기가 어려웠다. 처음에는 졸음에 맞서 싸우며 열심히 책을 읽었으나 점점 몸의 각도가 기울기 시작하더니 자칭타칭 결벽증 소유자인 내가 대합실 벤치에 배낭을 베고 누워 쪽잠을 청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싸늘한 새벽의 공항 대합실에서도 시간은 흐르고 흘러,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나는 상하이에서의 감명 깊은 기억을 안고 무사히 런던행 비행기에 탑승하였다. 내 옆 좌석이 공석이어서 비교적 편하게 이용할 수 있었고 두 번의 기내식도 아주 맛있게 먹었다.
런던이 점점 추상이 아닌 현실로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이전까지만 해도 내가 퇴사한 것이 별로 실감 나지 않았었는데 이제야 반복되던 모든 일상을 떠나 왔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내 곁에 언제나 함께 하던 모든 것들은 내 곁에 없었고, 내 눈에 늘 익어있던 모든 풍경들은 완벽하게 내게서 멀리 사라졌다. 완전히 다른 환경에 놓인 이 기분은 제법 설레고 신나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나는 쳇바퀴에서 막 탈출한 다람쥐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