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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ria Mar 03. 2024

별 헤는 밤과 같이. 김환기 點點畵 展.

김광석 | 나무



무수한 점들로 이루어진, 언뜻 단조로워 보이는, 무엇을 그리고자 하였는지 명확치 않은 그 추상적인 푸르고, 붉고, 누렇고, 아득한 그림이 참 묘하게도, 보는 사람의 마음을 두방망이질하도록 만든다. 예술이란 건 사람이 하는 일이기에 그 사람의 드라마가 얼마만큼 어떻게 담겼는가에 따라, 무엇보다 그 사람의 드라마가 얼마나 매력적인가에 따라 그 산물인 예술품의 매력을 좌우한다. 그러한 맥락에서 김환기 화백의 그림에는 그의 드라마가 공들여 아로새겨져 있어 그림 한 장에 영화 한 편, 혹은 이야기책 한 권이 담긴 것만 같다.


그의 전면점화 작품들은 도판으로만 보아선 쉬이 예상해 보기 어려울 만큼 큰 크기를 가지고 있다. 그 커다란 캔버스 안에 정성스레 이야기가 하나씩 별처럼 박혀 있으니 마치 아득히 공활한 우주 안에 세상사 저마다의 소리 없는 아우성이 그-득히 차 있는 것 같아, 보면 볼수록 끝이 존재하지 않는 어두운 심연 속으로 회오리를 그리며 빨려 들어가는 것 같다.


처음에는 화가가 어떠한 심경으로 저 점 하나 하나들을 찍었을까 들여다보다가는 이내 그 관심은 인생 전체, 세상 전체로 확장되고, 그러다가 결국엔 ‘나’에게로 돌아온다. 우주의 먼지와 같이 작고 보잘것없게 느껴지는 나 자신의 이야기도 단순한 형태로나마 정성스레 모아놓고 보면 그럴듯한 작품 하나처럼 보일 수도 있겠구나 싶은 마음이 들어 새삼 눈물이 눈에 그렁그렁 맺힌다.


그림 하나가 머릿속에 오만 생각을 다 일으키니 작품 하나를 보는 데도 품이 많이 들고, 전시 하나를 다 돌아보려면 쉬운 일이 아니다. 정성껏 다 둘러보았어도 전시장을 나설 때는 참 아쉬움이 남는다. 잠깐 보고 떠나야만 하는 것이 아쉬워 저 작품 하나를 소장하여 집에 걸어두고 매일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사무친다. 하지만 김환기, 그의 작품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싼 값에 거래되는, 어나더레벨의 작가가 아니던가. 그저 헛된 망상에 지나지 않는 생각을 실소와 함께 슥삭슥삭 지워 버린다.


사실 나는 김환기의 추상화보다는 구상화를 조금 더 좋아하긴 한다. 하지만 이 <점점화> 전시는 그 제목답게 점화들을 선보이고 있었고, 구상화는 복제화로만 만나볼 수 있었다. 추상, 구상 나누는 것이 무슨 의미겠냐마는 어쨌든 김환기의 구상화에는 화가의 취향과 가치관, 시선이 그대로 담겨 있어서 또 다른 매력이 있다.


김환기 <점점화>전. 앙상한 풍경의 겨울이란 시공간에서 감상하기에 더욱 좋은 전시였다.


‘김환기’ 하면 그의 작품 명으로도 유명한 김광섭 시인의 시 <저녁에>를 빼놓을 수 없겠지만, 개인적으로 나에게는 그보다 윤동주의 시 <별 헤는 밤>이 더 선명히 떠오른다. 그리하여 그 시를 아래에 덧붙이며 마무리해 본다.



<별 헤는 밤>  - 윤동주作作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스라이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외다.

(1941. 11. 5.)





내가 좋아하는 가수 김광석의 <나무>라는 노래가 생각나 유튜브 영상의 링크를 첨부한다.♩





<우주> by 김환기 / ⓒ환기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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