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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ria Feb 18. 2024

작고 단순한 것들에 대한 사랑 그리고 고백. 장욱진 展

L. V. Beethoven | String Quartet No.16



張非空 居士 鵲鵲 無我無人觀自在 非空非色見如來

나도 없고 남도 없는(無我無人) 상태, 없는 것도 아니고 있는 것도 아닌(非空非色) 상태에서 부처의 모습을 본다.


화가 장욱진이 양산 통도사에서 만난 경봉스님으로부터 ‘비공(非空)’이라는 법명과 함께 받은 선시이다.

불교에서 비공이란 단순히 ‘공이 아님’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법에서의 깨달음의 경지인 공(空)에 이르는 과정에서 공, 비공에 집착하지 않고 모든 희론에서 벗어나 진정한 무생인(無生忍)이 된다는, 사색적이고도 고차원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장욱진 화백은 이 내용이 자신이 부여받기엔 과분한 듯하고, 그렇게 되기를 구하라는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하겠다고 했는데, 실로 그의 그림에는 이 말씀이 그대로 구현되어 있다. 내게 있어 그의 그림을 감상하는 일은 미학적인 측면에서의 행위로만 머물지 않고 나아가 조금 더 폭넓은 의미에서의 철학, 자아 성찰과 진리 탐구 측면에서의 형이상학, 논리학, 윤리학적인 행위에 가깝다. 그림에 시선을 두고 있다 보면 점차 나의 마음이 단정하게 정리되는 것을 느낄 수 있으며 결국에는 공(空)의 가치를 희구하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 단순한 그림 한 장에 세상이 담겨있는 것 같다. 그를 신격화하고자 하는 말이 전혀 아니니 곡해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저 화백이 다다르고자 하는 가치가 나의 그것과 닮은 것이고, 그 화백이 그림 속에 담아낸 그 가치를 응시하던 내가 이심전심처럼 자극을 받고, 감명을 받고, 스스로 깨우침을 얻는 것일 테다. 그럴진대 이 작가의 그림에 이토록 애정과 애착을 느끼는 것이 자연스러운 결과가 아닐까.



그리하여, 그토록 좋아하는 작가의 대규모 회고전에 거듭하여 다녀왔다. 12월에 한 번, 2월에 한 번. 모처럼 가까이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크게 전시가 열렸는데 겨우 두 번 밖에 다녀오지 못한 것이 내심 아쉽다. 전시 기간이 짧은 편이기도 했고, 내 삶이 원체 쓸데없이 바쁘기도 하고, 또한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일이란 것이 꽤 많은 정신력과 체력을 소모하는 일인지라 아무 때나 산책하듯이 가볍게 전시장을 방문하기가 내게는 쉽지 않다. 나름 잠도 잘 자고 식사도 든든히 마치고 커피도 한 잔 들이켜 줘야 비로소 작품을 감상할만한 적절한 몸 상태를 갖추게 된다. 그런데 그러한 몸 상태가 온전히 마련된 날이 일 년 중 어디 흔할까. 대개는 미처 준비되지 않은 상태의 몸을 질질 끌고 다녀오기 마련이다.



어쨌든 같은 전시회를 거듭하여 다녀오니 작품을 좀 더 폭넓게 즐길 수 있어 좋았다. 첫 번째 방문 때에는 주로 그림의 전체적인 구조와 조형미, 색감, 그리고 등장인물 및 사물의 특성에 초점을 두어 감상했다면, 두 번째 방문 때에는 물감의 농담, 색을 표현하는 작은 디테일의 차이, 그림 재료, 붓의 필치 등에 초점을 두어 감상하였다. 그러다 보니 분명 같은 작품, 같은 전시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새로운 다른 전시를 보듯, 처음 보는 작품 마주하듯 내내 새롭고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두 번째 방문에서는 먹그림에 가장 깊은 관심을 기울였는데, 먹그림을 통해 화가의 조형에 대한 미적 천재성을 다시 한번 깊이 실감할 수 있었다. 또한 먹그림에는 화가의 불교적 가치관이 가장 짙게 묻어나기도 하다. 장욱진 그림의 진정한 매력은 먹그림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혼자만의 생각을 해 본다.



비움과 단순의 철학을 몸소 실천하며 또한 이를 화폭에 담아냈던 장욱진의 그림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면 나는 베토벤의 후기 현악사중주, 특히 현악사중주 16번, 작품번호 135가 떠오른다. 둘의 조화를 실험해보고 싶었던 나는 헤드폰을 끼고 전시장 안을 이 곡과 함께 거닐었다. 화가의 불교적 가치관이 담긴 섹션에 다가갔을 때 공교롭게도 마침 이 곡의 3악장이 흘러나오기 시작하였다. 음악이 마치 화가의 마음을 안다는 듯이, 그리고 나의 마음을 안다는 듯이, 지음(知音)처럼 전시 동반자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 주었다.




산다는 것은 소모하는 것, 나는 내 몸과 마음과 모든 것을 죽는 날까지 그림을 위해 다 써 버려야겠다. 남는 시간은 술로 휴식하면서. 내가 오로지 확실하게 알고 믿는 것은 이것뿐이다. - 장욱진


새삼 화백의 삶이 부럽기도 하다. 좋아하는 일에만 마음껏 몰두할 수 있는 삶이 부럽기는 하나 한편으론 이러한 외골수의 삶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도 알기에 동시에 경모심이 든다. 나는 이처럼 열정을 불살라 헌신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꼭 무언가에 불태우듯 헌신하여 살아야만 올바른 삶인 것은 아니지만, 그리고 그래야만 행복한 것 또한 역시 아니지만, 단 한 번뿐인 인생을 뜨겁게, 누구보다도 진지하게, 미련이라는 것이 감히 남을 여지가 없을 정도로 무언가에 몰두하여 사는 모습에 대해 솔직히 부러운 맘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한 모습은 왠지 번쩍번쩍 빛나 보인달까.




나는 심플하다. 이 말은 내가 항상 되풀이 내세우고 있는 나의 단골말 가운데 한마디지만, 또 한 번 이 말을 큰 소리로 외쳐보고 싶다. 나는 깨끗이 살려고 고집하고 있노라. -장욱진


화가의 심플함을 배우고 싶다.

아이러니하게도, 화가의 심플함을 배우고 싶다던 나는 화가에 대해 전혀 심플하지 않은 장황설을 늘어놓았다. 심플하게 쓰려고 했는데 종국엔 실패하고 말았다. 난 갈 길이 멀다.






Alban Berg Quartett이 연주하는 Beethoven String Quartet No.16 in F major, Op.135의 영상 링크를 첨부한다.♪


장욱진 회고전이 열린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장욱진 화가의 말들. 그의 가치관이 잘 드러난다.


장욱진 화가의 그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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