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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ria Sep 23. 2023

길 위에 그와 함께 서서. Edward Hopper 展

R. Schumann | Geistervariationen






길 위에서.

금년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진행되었던 에드워드 호퍼 전시회의 제목이다. 이 제목에 담긴 길은 어떤 길을 의미하는 것일까. 말 그대로 사람들이 다니는 물리적인 길을 의미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의 인생의 과정을 길에 비유한 것일까. 중의적 의미를 가진 이 전시 제목은 나의 관심을 더욱 자아냈고, 워낙 전시 예약이 치열하여 시간이 많이 흐르고 인기가 좀 식고 나면 전시를 봐야겠다고 생각한 것이 결국 전시가 막을 내리기 직전까지 오게 되었다. 막바지쯤 되니 예약을 하기에는 수월했지만 막상 전시회장에 도착했을 땐 여전히 관람 인파가 대단하였고 이는 작품을 관람하는 데 작지 않은 방해 요소가 되기도 했다.


어찌 되었든 호퍼가 그리는 길 위에 나도 무사히 서 보았다.


도슨트 오디오는 구입하지 않았고 그냥 내 마음대로 편하게 작품들을 관람하였다. 내가 이야기하는 감상은 순전히 주관적이므로 다수의 감상과는 다를 수도 있다.


<Early Sunday Morning> by Edward Hopper (1930)


호퍼의 작품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는 ‘색’과 ‘구도’를 감각적으로 잘 쓰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명암에 따라 달라지는 색깔의 다채롭고 세밀한 변화들을 단순한 듯한 터치로 섬세하고도 깊이 있게 표현하였는데, 시각을 통해 원초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실제 자연의 색에 자신의 감정 및 상상을 통해 출력된 색을 더하여 조화롭고 감명적인 다층의 색감을 화폭에 담아냈다. 자연의 빛이 선사하는 아름다움 위에 호퍼는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덧칠하여 새로운 유형의 아름다움, 즉 예술(藝術)을 창조했다.(여기서 내가 말하는 아름다움은 단순히 예쁘고 이상적인 것, 긍정적이고 생기 있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의 그림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깔을 보고 있노라면 단순히 시각적으로 그림의 색과 선, 직관적인 아름다움을 읽어 들이는 것을 넘어서서 마음의 눈으로 그림을 관조하고 이에 내 경험과 심리를 투영하며 그림 너머의 좀 더 복잡한 차원의 아름다움을 감지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나도 모르게 그의 그림 앞에 멈춰 서서 넋을 잃고 그것을 바라보게 된다. 남들이 보기에는 멍하니 서 있는 것 같지만 그 정지한 육체 안에 들어있는 나의 영혼은 그의 그림 속 영혼과 바쁘게 소통하고 있는 것이다.


<Room in Brooklyn (좌) >, <Night Windows (우) >by Edward Hopper (1932, 1928)


그는 말수가 매우 적고, 고독(을 즐겼는지는 나도 모르겠지만)과 우울의 분위기가 가득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나는 절대 말수가 적은 사람이 아니지만(따지자면 오히려 많은 쪽이지) 고독을 즐기는 사람임은 분명하다. 때론 나를 쓸쓸하게 하기도, 때론 내게 평화와 안정을 가져다주기도 하는 그 고독을 나는 매우 사랑한다. 혼자 있을 때라야 비로소 내 안에 떠오르는 수많은 심상 및 영감들은 내겐 황홀하게 빛나는 보석과도 같다. 그래서 나는 고독의 상태에 놓이기를 자처하는 편이다. 스스로 고독의 광산에 들어가 보석 캐기를 즐기는 나는 그의 그림에서 동지애, 공감의 정서를 느꼈다. 누군가는 그의 그림을 보며 '쓸쓸하다, 우울하다, 외롭다'고 느낄 수 있겠지만 나는 그의 그림을 보며 '평화롭다, 편안하다, 고요하다, 좀 외롭긴 하지만 행복하다'고 느낀다.


<Sunlight in a Cafeteria> by Edward Hopper (1958)


그의 그림들을 보는 시간은 내가 길 위를 거닐며 사색에 잠기는 시간과 같았다. 그가 묵묵히 걸어가고 있는 사색의 길 위에 내가 그와 나란히 함께 있는 기분이었다. 그가 고개를 돌리는 대로 나도 함께 시선을 향한다. 그와 내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지, 각자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지는 우리 둘 중 아무도 모르지만 우리는 그저 같은 곳을 바라보며 각자 나름의 사색에 빠져있다.





* 처음 이 곡을 들었을 때, 곡이 끝난 후 그대로 자리에 정지한 채 한참을 여운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마치 그림 앞에 가만히 서 있던 것처럼 말이다.  R. Schumann | Geistervariationen ♪






<Automat> by Edward Hopper (1927)



<Stairway> by Edward Hopper (1949)



<Cape Cod Morning> by Edward Hopper (1950)



<Room by the sea> by Edward Hopper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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