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aria Dec 22. 2023

나와 너, 우리의 영혼의 형상. 화이트큐브 서울 展

Mahler | Symphony No.5



7인의 작가가 흰색 정육면체 공간 안에 꺼내 놓은 각자의 영혼의 형상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예술 작품은 감상자에 따라 얼마든지 해석이나 의미가 달라지기 마련인데 이 전시는 특히나 <영혼의 형상>을 주제로 한 만큼 감상자 개개인의 삶의 이야기에 따라 제각기 다른 울림을 느낄 수 있게 해 주어 흥미로웠다.

<영혼의 형상>을 주제로 열린 화이트큐브 갤러리 서울의 개관전.



특이하게도 이 전시는 작품 옆에 작가명이나 작품명 또는 해설이 게시되어 있지 않아서 아무런 정보 없이 작품을 있는 그대로, 순수하게, 철저하게 주관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전시장 입구에 있는 QR코드를 통해 이러한 정보들을 얻을 수 있다고 하는데 사실 귀찮아서 굳이 이용하지는 않았다)


아래의 사진은 이 전시에서 나의 시선을 가장 오랫동안 잡아끌었던 작품이다.

<Always Floating In a Constant Distance> by 크리스틴 아이 추(Christine Ay Tjoe ; 인도네시아의 미술가)


내 안에 도대체 어떠한 의식이 잠재되어 있는 것인지는 몰라도 나는 이 작품을 보자마자 거의 소멸되어 가는 한 생명체의 주변으로 몰려든 곤충 무리, 그리고 그 안에서 발악하는 끈질긴 생명의 불씨를 연상하였다. 동행한 나의 친구는 이 작품을 보고 꽃을 떠올렸다고 했다. 같은 작품인데 이토록 다른 관념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흥미롭다.


다음 작품은 두 번째로 나의 시선을 잡아 끈 작품인데, 이 또한 각자의 삶의 이야기에 따라 각기 다른 관념을 만들어낸다는 것에 흥미로움을 느끼도록 한 재미있는 작품이다.

<Study for a Fungus Garden> by 마르게리트 위모(Marguerite Humeau ; 프랑스의 미술가)


나는 이 작품을 보고 수정(fertilization) 과정을 연상하였는데, ‘생명’을 위해서 치열하게 고군분투하는, 삶에 대한 본능적이고도 원초적인 의지의 장을 형상화하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나중에 집에 돌아와 찾아보니 이 작품의 제목은 <Study for a Fungus Garden>이며, 이 작가가 구현하고자 했던 주제는 <수수께끼 같은 삶, 그리고 죽음 이후>라고 한다. 나는 작가가 표현하고자 했던 의도와 꽤 많이 다른 관념을 떠올린 것이다. 하지만 추후 작가의 의도를 접하고 작품을 다시 보니 그녀가 표현하고자 했던 주제의식 또한 이해가 되었다.


마르게리트 위모 작가의 또 다른 작품들. 아래에 놓인 것은 <The Guardian of Termitomyces>



다른 작가의 작품들도 여러 가지가 있으나 내게 크게 인상 깊었던 작품들은 위에 언급한 바와 같다.


어찌 보면 사전정보 없이 블라인드 감상이었다고 할 수 있는 이번 전시는 내 안에 어떠한 의식, 관념이 자리하고 있는지, 나 자신의 내면에 대해서 의도치 않게 마주하는 기회를 갖도록 해 주었다. 역시 현대미술을 즐기는 재미는 이러한 순간들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덧붙이자면, 화이트큐브는 영국에 본거지를 둔 유명한 현대미술 갤러리로, 1993년 런던 세인트 제임스 지역에서 시작하여 현재는 홍콩, 파리, 뉴욕, 웨스트팜비치, 그리고 서울까지 세계적으로 전시장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최근 런던 여행을 갔을 때 화이트큐브 런던에 굉장히 방문하고 싶었으나 여행 일정 상 도저히 시간이 안 맞아 눈물을 머금고 다음을 기약하게 되었는데, 이렇게 화이트큐브 갤러리가 서울에까지 상륙하다니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본 글로써 서술한 이번 화이트큐브 서울의 개관전시는 12월 21일을 끝으로 마무리되었지만 앞으로 계속해서 선보일 또 다른 새로운 전시들이 기대된다.



+ 작품을 감상하는 동안 생명의 탄생부터 소멸까지, 그리고 그 가운데 한 개인의 삶의 이야기의 과정에 대해 생각해 보며 나는 자연스레 말러의 교향곡 5번, 특히 4악장 및 5악장을 떠올렸다.

유튜브에 있는 Claudio Abbado 지휘, Lucerne Festival Orchestra 연주의 영상 링크를 첨부해 본다.


-화이트큐브 서울 개관전 전시정보-
주제 : 영혼의 형상(The Embodied Spirit)
전시 디렉터 : 수잔 메이 (Susan May)
참여 작가 : 이진주, 루이스 지오바넬리, 크리스틴 아이 추, 트레이시 에민, 버린드 드 브렉커, 카타리나 프리치, 마르게리트 위모
매거진의 이전글 길 위에 그와 함께 서서. Edward Hopper 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