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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ria Nov 09. 2024

베네치아의 사자의 죽음. <오텔로>



VIVA VERDI!


이탈리아 오페라의 거장 베르디, 그의 말년의 천재성이 극에 달하여 거의 화산 폭발하듯 분출된 수작 <오텔로>가 거의 10년 만에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무대에 올랐다. 셰익스피어의 <오셀로>를 원작으로 한 이 오페라 작품은 세리아 장르로, 인간 내면의 심리를 집요하게 파고들어 꺼내 보여줌으로써 철학적이면서도 동시에 베르디의 음악성이 반짝반짝 빛남으로써 예술적이기도 한, 요즘 유행하는 말로 표현하자면 ‘육각형’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너무 주접을 떨듯이 극찬했나 싶기도 하지만… 정말 (잘 만들어진)<오텔로>를 보고 나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장중한 희곡적 매력과 음악적 매력이 조화롭게 안배된 <오텔로>는 그래서인지 세상 사람들로부터 바그너 악극의 스타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 아니냐는 비판을 듣기도 했지만 베르디는 그저 베르디의 길을 갔을 뿐이다. <오텔로>는 앞서 표현했듯 베르디가 일생동안 차곡차곡 쌓아온 재능과 경험을 버무려 갈고닦아 만든 노익장의 결정체다. 그러한 작품을 실연으로 만나볼 수 있다니, 그것도 우수한 오페라 가수들의 노래와 연기로! 새삼 산다는 건 참 즐거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멋진 것들을 보고 듣고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내가 관람한 회차의 ‘오텔로’는 테너 이용훈이, ‘이아고’는 바리톤 프랑코 바살로(Franco Vassallo)가, ‘데스데모나’는 소프라노 흐라추히 바센츠(Hrachuhi Bassenz), ‘카시오’는 테너 이명현이 맡아 연기했다. 사실 캐스팅에 전혀 신경쓰지 않고 그저 내가 관람 가능한 일자로 예매했을 뿐인데 공연장에 와보니 테너 이용훈이 주연을 맡았음을 뒤늦게 알게 되어 마치 깜짝 선물이라도 받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오케스트라 연주는 (다행히) 국립심포니 오케스트라가 맡았고 무려 카를로 리치(Carlo Rizzi)가 지휘하였는데, 이 날 공연에서 오케스트라 연주가 너무나도 훌륭하고 만족스러워 내심 놀랐다. 단원의 기량도 중요하지만 그 기량을 이끌어내는 지휘자의 역량도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 기회였다.


오텔로를 연기한 테너 이용훈의 노래와 연기는 매우 훌륭하여 내면의 자격지심과 이아고의 이간질이 만나 극적인 갈등을 겪는 ‘성공했지만 불안한 남자’의 심리를 매우 잘 보여주었다. 특히 극의 후반부로 갈수록 절정에 이르러, 4막에서는 그의 극도로 혼란스럽고 후회스러운 심정에 이입한 나로부터 눈물을 이끌어내기까지 했다. 데스데모나를 연기한 소프라노 흐라추히 바센츠의 노래와 연기 역시 좋았는데 전반부에서는 특별한 인상을 주지 않았으나 3막, 그리고 특히 4막에서 펼친 애절한 노래와 감성은 그녀가 이 공연의 프리마 돈나임을 공고히 보여주었다. 4막에서의 그녀의 독창에 어찌 동요하지 않을 수 있을까. 프랑코 바살로의 이아고 역시 캐릭터의 악마성을 잘 보여주는 바리톤 음성으로 극으로의 몰입을 도와주었다.


훌륭한 음악, 연기, 그리고 연출로 구현된 <오텔로>를 감상하였으니 너무나도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 이 글을 시작하며 산다는 건 즐거운 일이라고 이야기했지만 한편으로 삶에는 온갖 시련과 불행이 함께 하기도 하니 때때로 참 고통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사람들로부터 ‘베네치아의 사자’라 칭송되는 오텔로가 이 영광스러운 자리에 오기까지, 그리고 오른 후에도 여전히 고통으로 평화로울 날 없는 모습을 보며 어쩌면 죽음으로 마무리되는 그의 최후는 소크라테스의 말을 빌려보자면 드디어 죽음이라는 축복을 받았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오텔로도, 카시오도, 데스데모나도 모두 죽었으나 홀로 살아남은 이아고는 앞으로 살아가면서 또 얼마나 숱한 원망, 불안, 질투 따위의 감정으로 고뇌(고통)를 겪겠는가. 최후의 생존자(?)가 된 이아고가 가장 복 받은 사람인지는 진정 모를 일이다.



<Otello> 공연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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