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 Rachmaninoff | Piano Concerto No. 2
국내에서 웬만하면 별 걱정 없이 믿고 들으러 갈 수 있는 몇 안 되는 악단, 국립심포니의 러시아 특집 공연이었다. 주최 측의 프로그램 노트에 의하면 러시아 혁명 이후 고국을 떠난 스트라빈스키와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을 들려줌으로써 디아스포라 감성을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하였단다. 연주 프로그램은 스트라빈스키의 <불꽃놀이>,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2번, 그리고 스트라빈스키의 <페트루슈카>로 구성되어 있었고, 솔직히 디아스포라 감성을 전하는 프로그램인가에 대해서는 다소 의문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연주될 곡들 모두 다 내가 좋아하는 곡들이어서 기대를 안고 공연장을 찾았다.
하지만 이게 웬걸. 서곡 삼아 연주된 스트라빈스키의 <불꽃놀이>부터 투박하고 날카로운 소리를 들려주며 은근슬쩍 당황케 하더니, 1부의 본곡과도 같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2번 차례에서 기어코 아연실색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도록 하였다. 국립심포니와 호흡을 맞춘 피아니스트 알렉산더 코르산티아(Alexander Korsantia)의 피아노 연주는 팀 게임 도중 혼자 흥분하여 질주하는 한 명의 팀원 같았다. 피아노와 오케스트라 간의 합이 안정적이지 않은 것은 물론이요, 피아니스트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2번 특유의 섬세하고 애절한 감성은 뒤로 한 채 거의 피아노를 잡아먹을 듯, 아니 사실은 때려 부술 듯이, “아저씨 피아노 되게 잘 치지?”라고 보여주고 싶어 흥분한 것처럼 무아지경에 빠져 연주하였다. 차라리 오케스트라와 합이라도 잘 맞았더라면 나름의 색다른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2번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나는 1부 내내 이 혼란스러운 음악에 휩싸여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연주의 신박한 새 역사가 쓰이는 현장을 목도해야만 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 인터미션의 시간 동안에도 1부의 충격을 완전히 극복하지 못한 채 2부의 페트루슈카 연주를 감상했다. 1부에서 폭주기관차의 질주를 맞닥뜨리고 와서일까, 2부의 페트루슈카는 웬일인지 특별한 인상도, 서사의 재미도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음악에 따라 내 멋대로 장면을 상상해 나가며 듣는 재미가 있는 <페트루슈카>인데 어쩐 일인지 그를 듣는 내 머릿속 상상의 나래가 활력을 잃고 풀이 죽어 있었다. 이러한 까닭에는 아마 어수선한 객석의 관람 분위기도 한몫했을 터이다.
2부의 페트루슈카는 분명 1부의 연주보다 훨씬 나은 연주였지만 전반적으로 기대했던 바를 충족하지 못한 공연이었음은 부정할 수가 없다. 오랜만에 참 재미있는 경험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