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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하는 몸 Aug 09. 2019

[전문] 6화.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은 몸

http://www.podbbang.com/ch/1769459


"나는 페미니스트이고 여성을 비현실적인 이상에 구겨 넣으려고 하는 천편일률적인 미의 기준이 사라져야 한다고 믿는다. 다양한 체형을 포함하는 더 넓은 의미의 미의 정의가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여성이 자신의 몸을 편안하게 여기는 것이 매우 중요하고 그렇게 되기 위해서 자신의 몸을 세세한 부분까지 바꾸려 들지 않아야 한다고 믿는다. 한 인간으로서 나의 가치는 내 옷의 사이즈나 외모에 있지 않다고 믿고 있다. 내 몸이나 내 몸이 어떻게 보여야 한다는 것에 대해 비합리적인 기준에 저항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믿는다." (록산 게이의 '헝거' 중에서) 


"안녕하세요. 저는 올해 6월에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라는 에세이를 출간한 백세희 작가라고 합니다. 사실 에세이라기보다는 제 정신과 치료 일기인데요. 


저는 기분부전 장애라는 우울증을 앓고 있는데, 이걸 간단하게 말씀드리자면 경도의 우울증이에요. 사실 경도의 우울증이라고 해도 굉장히 유동적이거든요. 어떤 날은 정말 아무렇지도 않고 어떤 날은 자살 사고가 너무 심하게 들어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루 종일 할 정도로 좋지 않고. 밖에 나가지도 못할 만큼. 또 어떤 날에는 행복하게 잠들어요. 


이런 식으로 감정이 널뛰고 일반적인 날 그리고 내가 너무 우울한 날이 반복되니까 내가 그냥 간혹 우울하거나 예민한 사람인 건지 아니면 정말 우울증인 건지 좀 헷갈리는 병이라고 해요. 


사실 나랑 비슷한 사람이 조금은 있겠지?라는 생각을 하긴 했는데, 베스트셀러가 될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던 거죠. 그래서 사실 처음에 놀랐어요. '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나랑 비슷한 증상을 겪고 있구나' 도대체 어디에 있었던 거지? 이런 생각이요. 


가장 많이 받았던 메시지가 내 일기장인 줄 알았다는 메시지예요. 그래서 사실 처음에는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나만 또라이가 아니구나. (웃음) 이런 생각에 위안이 됐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 마음이 아팠어요. 


왜냐하면 제가 힘들었던 만큼 그분들도 똑같이 힘들었을 거 아니에요. 아 내가 이상한 거야, 내가 나약한 거야, 내가 예민한 거야, 하면서 숨기고 감추고 곪았을 상처들을 생각하니까 좀 마음이 아팠고요. 그런데 일단 나랑 비슷한 사람들이 많고 내가 이상한 게 아니다, 이것 자체가 엄청 큰 위안을 주는 것 같아요. 외로움이 좀 덜해졌어요. 혼자가 아니구나, 라는 생각 때문에. 


저는 그러니까 우울증을 앓고 있는 제 몸은 일반 사람들에 비해서 허약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일반 사람들이라고 하면 정신이 건강한 사람들? 제 개인적인 느낌이지만요. 마음 상태가 좋지 않다는 건, 그 약해진 마음이 몸을 지배할 때면, 침대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가 없고 우울이 몸을 짓누르는듯한 무게감을 느껴요. 굉장히 강하게. 그래서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어서 회사를 다닐 때 연차를 쓴 적도 여러 번 있었어요. 욕먹기 싫어하는 성격인데도. 너무 힘들어서. 


사실 이런 상황에서도 몇 년간 꾸준히 사회생활을 했고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충분히 의지로 가능한 부분이다, 다들 힘들고 다들 회사 가기 싫다, 뭐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그런 식으로 몸을 혹사시키면 언젠가 탈이 나듯이 내 마음을 혹사시키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다 보니까 직장도 다니고요, 몸과 마음이 모두 무너지는 결과를 낳은 것 같아요, 결과를 낳았어요. 


그래서 우울증을 앓고 있는 내 몸은, 내 의지대로 움직여주지 않고 그래서 사실 저는 제일 두려운 게 미리 약속이나 일정을 잡는 거예요. 사실 공포스럽기까지 해요. 그래서 이 팟캐스트 일정도 '아 제발 그날 내 컨디션이 좋기를' '내가 일어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랄 정도로. 언제 어떻게 내 마음이 몸을 짓누르게 될지 모르니까. 그래서 우울증은 저뿐만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피해를 주게 되죠. 


주변 사람들은 정말 걱정을 많이 했어요. 왜냐하면 제가 원래는 엉엉 울고 괴로워하고 밤을 지새우면서 힘들어하고 이 정도로 끝났었다면 이제는 몸에 상처를 내는 단계에 들어갔으니까 한 단계를 더 갔다고 생각을 하는 거죠. 게임 스테이지를 깨듯이? 그래서 점점 자살에 가까워질까 봐 굉장히 두려워했어요. 그래서 저도 그런 제가 굉장히 두려웠어요. 처음 자해를 했을 때는. 어떻게 내가 내 몸에 칼을 댈 수가 있었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왜냐하면 자살 충동이 정말 강할 때는 진짜 집 옥상에 뛰어올라가서 저는 빌라에 살기 때문에 옥상 올라가면 지붕이 이렇게 있어요. 지붕 위까지 올라가서 밑에를 내려다보고 그래요. 그러면 정말 그런 상태일 때는 발을 잘못 헛디디면 내가 원하지 않더라도 죽을 수 있는 그런 상황이기도 하잖아요. 


자꾸 그런 일이 반복되니까 나는 지금 너무 죽을 것 같은데, 뭐라고 해야 되겠는데 그렇다고 죽을 수는 없어, 맨 정신에 했더라도 아 진짜 이게 뭐하는 짓이지?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너 그렇게 죽고 싶고 네 몸에 상처를 낼 정도로 죽고 싶으면 그냥 죽어 깔끔하게, 그런데 이게 뭔 유난이야, 남한테 보여주고 싶어서 이래? 이런 식으로 저를 자책하게 돼요. 


사실 몸은 더 큰 우울감을 가져다주는 요소예요. 저에게. 이상적인 몸의 기준을 정하고 거기에 가까워질수록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문화가 있잖아요. 그런 게 생긴 것 같아요. TV를 봐도 그렇고 SNS를 봐도 그렇고 그래서 그 문화가 제 몸을 혐오하게 만들었어요. 


어릴 때는 날씬한 몸, 마른 몸을 원했으면 지금은 조건이 더 디테일해진 거죠. 예를 들면 승모근이 없고, 얇으면서도 적당히 넓은 직각 어깨, 크고 예쁜 가슴, 긴 팔과 다리, 골반이 넓은 것, 그리고 다리가 울퉁불퉁하지 않고 매끈한 일자 다리, 이런 것들의 조건에 저를 끼워 맞추려고 했어요. 그런데 제 노력만으로 바꿀 수 없는 부분이 많잖아요. 


예를 들면 제 팔과 다리가 길어질 수도 없고 골반이 넓어질 수도 없고 바꿀 수 없는 부분에 좀 심하게 과하게 절망하고 분노했어요. 그게 또 우울증으로 이어졌고요. 너무 우울한 거죠. 아 진짜 너무 내 몸이 혐오스럽고, 이런 내가 싫고, 이러다 보니까 더 상태가 악화되고, 그래서 사실 저는 우울증이 제 몸에 영향을 미친 다기보다는 내 몸이 우울증에 영향을 준 적이 많았어요. 


저는 외모 강박이 병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실제로 신체 왜곡증이라는 질환이 있대요. 남들이 볼 때는 날씬한데 내가 거울로 나를 보면 뚱뚱해 보이고 내 얼굴이 일그러져 보이는 거죠. 그러니까 계속 성형을 하고 계속 살을 빼고. 그런데 저는 외모 강박 이렇게 병으로 지정돼야 할 정도로 이게 심각하다고 생각하는데, 이해 못하는 사람들이 있죠. 


그런데 저는 그걸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게 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왜냐하면 TV만 틀고 인터넷만 켜도 이게 멋진 몸매야,라고 전시하는 몸매들이 너무 많고 어떤 게시글을 봐도 다이어트하는 법, 이런 언니의 몸매를 가지는 법, 아직도 다이어트 안 해? 비키니 안 입을 거야? 이런 식으로 온갖 여성들에게 다이어트와 몸매 가꾸기를 권하는 콘텐츠라고 해야 하나? 너무 많아요. 


그런 것들을 보면서 어떻게 영향을 안 받을 수 있는지 저는 의문이거든요. 그래서 지금은 아 나 예쁘다, 자기 최면을 거는 게 아니라 아 이게 내 얼굴이지, 만족하자, 그냥 충분해 지금도, 이게 나니까. 이런 식으로 생각이 조금 바뀌었어요. 바꿀 수 없는 부분에 엄청 집착했던 것 같아요. 


재밌게도 내일 타투를 하러 가는데, '헝거'를 레터링으로 새기래요 해요. 책에 있는 서체 그대로. '헝거'의 뜻이 굶주린, 그리고 갈구하다, 이런 의미가 있잖아요. 그런데 그게 정말 제 이야기인 거예요. 


저는 항상 뭘 갈구하는 느낌이에요. 사실 우울증도 잘 살고 싶기 때문에 걸리지 않았을까요? 저는 원하는 것도 많고 갖고 싶은 것도 많고 애정도 갈구하게 되고 애정에 굶주려있고 정에도 굶주려있고 이런 저를 그냥 새기고 싶었어요. 이거 보면서 되새기고 충만한 저를 만들어가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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