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빌런

by 빌런 사냥꾼

금요일 밤 12시가 조금 넘은 시간, 신도림 역에서 홍대행 지하철 2호선에 몸을 구겨 넣었다.

내일 출근 걱정이 없는 사람들은 불콰하게 취해있다. 적당한 술냄새, 적당한 온도, 적당히 좋은 기분.

손잡이에 기대 잠든 사람, 친구와 앉아 소곤소곤 대화하는 사람, 클럽에서 밤새우려고 신난 사람.


지하철은 사람들로 적당히 채워졌지만, 빈자리가 없는지 눈으로 스캔한다.


'저기 빈자리가 있다! 그런데 왜 저기만 사람들이 없지?'

자리에 앉아 책가방을 무릎 위에 올리고 스레드에 올라온 글을 읽는다. 맥락 없는 유머를 읽고 킥킥댄다.


내 옆에는 부부로 추정되는 중년남녀가 한쌍이 앉아있다. 그 부부 앞에 비슷한 또래의 아저씨가 손잡이를 잡고 서 있다.


"야, 너 인마! 내 말이 우스워? 대답이 안햇."

손잡이 아저씨의 화통 삶아 먹은 큰 소리에 화들짝 놀라 쳐다보았다. 아저씨랑 눈이 마주쳐 다시 휴대폰을 보는 척, 아저씨에게 신경을 쏟았다. 셋이 친구 같은데, 왜 싸우는 걸까. 중년 부부가 입을 꾹 다물고 있자, 손잡이 아저씨가 왜 대답이 없냐고 이번에는 손가락질까지 한다.


손잡이 아저씨는 합정에서 내렸다. 부부는 내리지 않는다. 목적지가 다른가보다 생각했는데, 부부의 대화가 들린다.


"저 아저씨, 미쳤나 봐."

"미친놈한테는 대꾸하면 안 돼. 지하철에 이상한 놈 많으니까 더더욱."


아, 친구가 아니었구나. 손잡이 아저씨 지하철 빌런이었구나.

그래서 이쪽에만 빈자리가 있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