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차려, 여긴 회사야

by 빌런 사냥꾼

회계팀 탕비실에서 동기들이 수다를 떠는데 스마트폰이 부르릉 진동한다.


'김대리 님, 부장님이 찾으세요. 빨리 올라오세요.'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이따가 다시 올 테니까 어떻게 됐는지 말해줘. 나 빼놓고 이야기하지 말고, 알았지?"

"알겠습니다, 김대리 님. 이따가 봐."


김대리가 탕비실을 나가자 회계팀 박대리, 서주임이 한 마디씩 한다.


"김대리는 왜 맨날 우리 팀에 오는 거야. 가뜩이나 할 일도 많은데."

"그러게 말이에요. 김대리 님이 탕비실에 있으면, 으~ 믹스커피 한잔 마시려다 십분 이십 분씩 붙잡혀 있어요. 중간에 나가면 한 소리하니까 눈치 보이고요"

"나는 동긴데도 눈치 보여. 서주임도 고생이야."


김대리는 자리로 돌아가 은서 씨에게 눈을 껌뻑였다.

'무슨 일이야?'


은서 씨는 김대리 자리로 가, 왼손을 김대리 귀에 대고 속삭였다.


"부장님께서 김대리님 오시면 바로 회의실로 오라셨어요. 조금 화가 신 거 같은.."


말을 끝맺기도 전에 김대리는 알겠다며, 결제서류 판과 수첩, 스마트폰을 들고 회의실로 포로로 달려갔다.


회의실 문 앞에서 숨을 고르고 회의실 문을 똑똑 두드렸다. 안에서 들어오라는 말을 듣고 문을 열었다. 회의실 안쪽에는 거래처 직원들이, 바깥쪽에는 부장님과 우리 회사 직원들이 마주보고 앉아있었다. 거래처 사람들은 조근조근 따지며 언성을 높이고 부장님은 난처한 듯 상황을 설명하고 있었다.


"저희가 왜 손해를 감당해야 합니까. 주문서에 기재된 내용이랑 첨부된 견본 파일이 일치하지 않아, 확인 메일을 보내드렸잖아요. 부장님 직원분이 견본 파일 무시하고 주문서 내용이 맞다고 해서 그대로 진행했는데, 이제와서 견본 파일 내용이 맞다고 하시면 어떻합니다."


"오해가 있으신거 같은데, 저희쪽에서는 견본파일대로 진행하겠다고 결제를 받은 상태입니다. 메일이 제대로 간게 맞는지...아 저기 담당자 왔네요. 김대리, 이거 자네가 보낸거 맞지?"


아, 이건 부장님이 내게 검토 후 보내라고 했는데 내가 다른 사람에게 토스한 메일이었다. 늘상 보내는 서신 문구에 주문서를 작성하고 파일만 첨부하면 되는거라 간단한 일이었다.


"왜 말이 없어. 김대리가 보낸거 맞잖아."

"제가 보낸게 아닌데...요."

"뭐야, 내가 김대리 보고 꼼꼼히 검토해서 보내라고 신신당부했잖아. 아냐?"

"아, 그게... 제가 급한 일을 처리하느라."

급한 개인업무를 처리하느라 못했다.


부장님이 어이없다는 듯 말을 고르지 못하고 쳐다보자 옆에 있던 과장님이 한숨을 쉰다. 거래처 사람들과 우리 회사 직원들이 한 마디씩한다.

"들으셨죠, 일단 부장님 회사에서 실수한 일이니 저희쪽에서는 그대로 진행합니다."

"김대리, 어떻게 할거야?"


똑똑, 회의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

"부장님, 블라인드 게시판에서 난리가 났어요."




'xx과 K대리 때문에 팀 분위기 싸함'

- K 때문에 옆팀 대리랑 주임이랑 대판 싸움. 없는 말 만들어서. 아니면 말고야.

-맨날 우리팀 와서 죽치고 있음, 그 팀은 한가한가봄

-회사 시시콜콜 가십을 알려줘서 처음에는 재미있었음. 그런데 어느 순간 내 이야기를 퍼트리고 있더라. 가십거리 만드는 암 같은 x임

-내 동기가 서류 다 만들면 사인만 함. 과장님 부장님한테는 밤새 자기가 만든척 PR. 깨지면 내 친구한테 화풀이. 난 저런 사람이 되지 말아야지 다짐

- 4층 여자화장실 끝에서 두번째 칸. K대리 죽치고 있으니 조심! 비밀 이야기 금물!!




김 대리는 게시판을 읽던 부장님과 눈이 마주쳤다.


"김 대리가 이 건 책임져."

"김 대리, 이 대리한테 내 이야기도 했어? 내가 비밀이라고 했잖아"

"김 대리, 이거 당신이 다 기획한거라고 해서 내가 타팀에 얼마나 자랑했는데."

"어제 급한 일이 있다고 부장님한테 잘 말해달라며. SNS에 이거 뭐야?"


"부장님, 이거 제 이야기 아니예요."

발뺌을 해보지만 사람들은 이미 팔짱을 낀 채 차가운 시선을 보낸다.


아니야, 아니라고 소리치는 순간 사무실에서 깼다. 사무실에서 엎드려 잤나보다. 입가를 닦고 스마트폰으로 시간을 본 후 옷매무새를 정리한다. 정말 어처구니 없는 꿈이다. 컴퓨터를 끄고 가방을 챙겨 회사를 나온다. 지하철에 앉아 잠이 든다.


똑똑,

"인사팀에서 왔습니다. OO팀 사원이 김 대리로부터 모욕적인 이야기를 들었다고 고발했습니다. 때에 따라서는 성희롱으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 따라 오시지요."

"왜 김 대리 가방에 대외비 자료가 들어있지요?"

"야근 수당 신청해놓고 계속 자리를 비우셨네요?"


'이것도 꿈이야? 나 깨워줘, 깨워달란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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