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딩소사이어티 11기: 도널드 밀러 '오색사막 순례 이야기'를 읽고
*[독후상량] 매거진에는 책모임 [리딩소사이어티]에서 함께 책을 읽고 생각했던 내용을 독후감 형식으로 적어가려고 합니다. 독후상량은 구양수 선생이 말한 다독, 다작, 다'상량'에서 따온 것으로 책을 읽은 후 느낀 것이라기 보다는 머리속에서 계속 맴돌고 떠나지 않는 생각들을 풀어내고 싶어서 매거진 이름으로 지어보았습니다.
여행 관련 책을 읽고 책모임 나눔을 준비하다가 여행이 가져다준 생각의 변화, 혹은 반대로 생각의 변화를 위해 여행을 떠났던 기억을 돌아보았다. 물론 내겐 그런 거창한 여행의 기억은 없다. 그저 대학을 들어가서는 그제야 몰려왔던 중2병스러운 인생 고민과 막연한 허전함을 마음속 한편에 눌러두고 아무렇지 않게 학점을 따고 동아리 모임을 하고 이성을 만나는 일에 지쳐 적절한 시점에 군대를 갔다. 또래 남자들이 그렇듯 그 기간이 좋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솔직히 말해 벅찬 일상을 멈추고 한 숨을 고를 수 있는 시간을 얻었다는 건 일면 사실이기도 하다. 그 외엔 의도적으로 삶에 휴지기간을 가지려고 어딘가를 떠난 적은 없다.
굳이 따져보자면 회사일로 6개월간 출장을 간 시간이 억지로나마 그런 시간을 주긴 했지만, 내겐 어떤 여행이 가져다 준 주의환기 시간에 의해서가 아니라 종종 관심 영역의 책을 통해 생각의 뼈대를 세우고 빈번하게 그 생각을 내 가치관이나 행동지침으로 체화하려는 어떤 계획성 있는 삶의 태도가 과거와 다른 나의 정체성을 만들어갔다는 게 더 적절한 설명이 될 것 같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런 태도를 너무 젊은 시절부터 체화한 것 같고, 이삼십 대의 대부분을 애늙은이로 살게 만든 원인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바라건대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면 좀 더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더 많이 놀고,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더 많은 곳을 돌아다니며 경험할 수 있는 지평을 넓히는 데 시간을 더 썼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이 또한 다시 생각해보면 이런 낯설고도 새로운 반성들조차 중년 인간들 대부분이 그 시기에 생각할 법한 후회의 흐름이기도 하다. 다시 돌아간다면 이렇게 살지 않을 것이다, 나는 청년기를 허비했다, 나는 지금의 삶을, 지금의 내 가치관과 정체성을 비판적으로 생각하고 지금의 내 어떤 면을 반성한다.. 이런 류의 생각은 중년의 시기에 접어든 자신의 현재를 필요 이상으로 부정하고 그 반대의 방향으로 달려가게 만든다. 실제로 그렇게 삶의 전환을 모색하고 뛰어드는 사람들이 있으며 그중 일부는 성공적으로 변화하고 다수는 뒤늦게 사람이 이상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런 생각에 대한 내 잠정적 결론은 이러하다. 나를 가장 잘 아는 건 나다. 물론 이 생각에 우선하는 기본 전제는 내가 끊임없이 나를, 나의 생각을, 나의 행동을, 일상적인 어투를 비판적으로 살펴보고 고치려는 열린 마음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는 데 있겠고 그런 엄한 전제하에서라면 나를 이루어온 과거의 큼직한 기억과 변화의 방향과 굵직한 가치관들을 갑자기 비판하거나 비하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각각의 반성들은 그저 형성된 가치관에 따라 조정될 따름이다. 점진적 변화가 사회에서도 큰 저항이 없듯 한 개인의 변화에도 시간이 필요하고 정상성을 유지하는 호흡이 필요하다. 그래서 낯설지만 긴 여행이 도움이 되며 낯선 생각들을 길게 가져갈 이유가 된다. 나를 잃지 않으면서 나를 더 나은 존재로 이끄는 건. 결국 스스로를 믿는 기반 위에서 가능하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여전히 흔들리는 나를 조금 더 따뜻하게 지지해주려고 한다.
*도널드 밀러의 오색사막 순례 이야기 북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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