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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J Anne Apr 17. 2022

취하라 하지 않았는데 그의 글에 취해 버렸다.

<울다가 웃었다> by 김영철

언젠가 인스타에 Hippler 현주님의 피드 중에 에세이 추천글을 보았다.

개그맨 김영철 씨의 에세이 <울다가 웃었다>를 읽고 글이 참 따뜻하다며 함께 찍은 사진과 응원하는 메세지까지 적어주셨다. 나도 구독하고 있는 ‘밀리의 서재’에서 스치듯이 본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다른 책들에 휩싸여 그냥 지나가버린 것 같다. 나에게 그는 평범한 개그맨이기도 했고, 나의 책장에는 읽고 싶은 책들이 이미 많이 쌓여 있었다.


이렇듯 아무렇지도 않게 스쳐 지나갈 수도 있는 인연일 수도 있었는데 좋아하는 분이 추천하시니 더 호감이 갔다. 이런 내 모습을 보니 추천사 존재의 이유를 알 것만 같다. 최근 윤고은 님의 ‘빈틈의 온기’는 장동선 박사님의 추천사 덕분에 읽게 됐으니 이 정도면 나도 한 팔랑귀 하는 듯.  여튼 저자가 개그맨이라 가볍게 읽을 수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햇살 좋은 가을날 살랑살랑 가벼운 마음으로 펼쳐 들었다. 그리고 들이치는 깨달음 하나, 누구의 인생도 가볍지 않다는 것, 나는 그것을 간과하고 있었다.


글이란 것을 써보기 전에는 전혀 알지 못했던 세상이 있었다. 나의 이야기를 쓴다는 것,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쓴다는 것, 내가 살아가는 세상을 활자로 들여다본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고된 작업인지, 수없이 인생을 되돌아보게 만드는지 말이다. 이 고난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어쩌면 그의 이야기들이 깃털처럼 가벼이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한데 기록하는 삶을 살아보겠다고 나름 애를 쓰며 발버둥 치고 있는 나에게 다가온 그의 삶은 깊었다. 그것은 자신을 옥죄듯 어깨를 짓누르는 삶의 무거움이 아니라 상처 난 마음 저 깊은 곳을 훑고 내려가는 느낌이랄까? 거기에 살짝살짝 더해진 그의 위트 있는 말투들은 인생의 희로애락은 누구에게나 있다며 조곤조곤 위로하는 기분이었다. 그 위트는 읽는 내내 그의 밝음이 나에게로 전달되는 느낌이었다. 힘들었지만 끝내 한 권을 자신의 힘으로 완성했다고 이야기하는 그의 목소리에서 나오는 힘을 활자에서도 느낄 수가 있었는데, 그래서 더 감동으로 와닿지 않았을까?


특히나 칭찬을 받아들임에 관한 그의 통찰은 정말 딱 내 스퇄이라고나 할까?


누군가가 ‘음식 잘하네?’라고 칭찬해주면 ‘그지? 맛있지?’라고 해보면 어떨까. ‘운동신경이 뛰어나네?’라고 칭찬해주면 ‘그럼, 타고났지. 올림픽은 나가지 못하는 실력이지만!’이라고 말해보면 어떨까. 우아하고 당당하게 칭찬을 받아들이는 센스! 칭찬에 반응해주는 건 칭찬해주는 사람에 대한 예의다. 그래도 적당한 겸손은 필요하다. - <울다가 웃었다> 131p

우아하고 당당하게 칭찬을 받아들이라니!! 어쩜 이렇게 다정하고도 속 시원한 사이다 같은지~ 딱 내 마음이었다!


연관된 나의 이야기를 하자면, 우리 집은 칭찬에 인색하지 않다. 아니, 인색하지도 않을뿐더러 칭찬을 당당하게 요구하는 집이다. 이는 혹여나 모르고 지나쳤을 경우에 못 알아준 이가 가질 미안함과 인정받고 싶은 이에게 스며들지도 모르는 서운함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남편과 내가 만들어가고 있는 가풍이다.


우리는 한결같이 뭔가 잘한 일이 있으면 당당하게 이야기하며 머리를 서로에게 들이민다. 이때 상대방은 기쁜 마음으로 칭찬해주며 머리를 쓰담 쓰담해주는데, 이렇게 계속하다 보니 때로는 칭찬받고 싶은 마음에 어떤 칭찬거리를 찾아 열심히 한 후 자랑하는 재미가 붙어버렸다. 심지어 아주 작은 것도 우리는 크게 오버액션을 동원하여 칭찬해주기도 하는데 이거에 중독되면 쉽게 빠져나오기 힘든 것 같다.


또 다른 하나는, ‘사랑한다고 굳이 말로 해야 해? 그냥 아는 거 아니야?’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나는 사랑한다고 부러 말하지 않으면 잘 모른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다. 실제로 정말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그런데 사랑은 참 이상하기도 하다. 마음을 들여 고백하고 끊임없이 이야기하면, 더 풍성해지지 절대 닳지 않는다. 그러니 사람들이 마음을 표현함에 인색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사랑하고, 칭찬하고, 응원하는 마음은 입으로 상대방에게 전달되는 순간 그 자리에 있는 사람 모두를 빛나게 만든다. 단, 누군가를 비판하거나 판단하는 일에는 과감히 인색해지면 참 좋을 것 같다.


입은 옷에 대한 칭찬, 소유한 물건에 대한 칭찬, 칭찬은 헛말을 방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 단, 성인지 감수성을 가지고 칭찬해야 한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책도 있지 않은가. 오랜만에 만난 상대의 자존감을 세워주는 말은 언제나 옳다. 단, 아부를 떨듯 말하면 진정성이 떨어지니 진심을 담아 말해야겠다. - <울다가 웃었다> 469p


칭찬은 헛말을 방지해준다는 말에도 더없이 공감했다. 나도 비슷한 경험이 많았는데 혹여나 내가 저지를 수 있는 많은 말실수들을 줄일 수 있었던 것은 칭찬 덕분이었다. 만남이 이루어지고 관계 속에서 내가 뱉은 한마디의 칭찬은 그저 지나가는 한마디의 말일 수도 있었겠지만 듣는 이에게는 마음을 도닥여주는 깊은 위로로 다가갈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런 순간을 단 한 번이라도 느껴본 사람이라면 이를 절대 가벼이 여기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다.


책의 제목처럼 작가 김영철은 독자를 진정 울다가 웃게 만들었다.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했던 그의 속 깊은 이야기를 들려주어 독자의 마음을 열어놓고, 때로는 진지하게, 때로는 유쾌하게 만드는 그의 필력에 감동했고 나도 그를 진심으로 칭찬해주고 싶다.


취하라!라고 이야기했던 샤를 보들레르의 말처럼,

‘다양한 독자들이 그의 이야기에 취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며 바래본다.




Anne이 반한 <울다가 웃었다>의 또 다른 문장들,


평생 갈팡질팡 헤매고 휩쓸리기만 한다면 문제가 있겠지만, 가끔 휩쓸려가는 건 괜찮다. 나는 앞으로 여행을 가든, 일을 하든, 친구를 만나든, 가보지 않은 곳으로도 가보려 한다. 밤낮으로 종일 헤매어보려고 한다. 조만간 새로운 일이 들어온다면 주도적으로 이끌어가기도 하고 휩쓸려보기도 하겠다. 단, 좋은 일에 휩쓸리는 건 좋지만 나쁜 일에는 절대 휩쓸려선 안 된다. - <울다가 웃었다> 295p


나는 배우고 싶은 게 있으면 일단 배워본다. 배우다가 재밌으면 열심히 해본다. 그러다 보면 배우고 싶은 게 할 수 있는 게 되고 잘하는 게 된다. 지금도 여전히 ‘내가 그래도 잘하는 게 뭘까?’ 고민하는 분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래도 내가 몇 번 해보았던 것, 그나마 내가 해낼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해보라고. - <울다가 웃었다> 42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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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밀리의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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