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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J Anne Sep 08. 2023

저 깊은 곳에 잠수해 있던 꿈을 하나 끄집어내다

아무튼, 잠수 - 하미나

바닷속 세상을 처음 마주한 날의 기억은 선명하다.


이퀄라이징이 제대로 되지 않아 오른쪽 귀가 너무 아파서 정신이 없던 나는 헤엄을 치지 않고 물속에서 자유로이 움직이다 눈앞에 노란색을 입힌 듯한 물고기 떼가 유유히 스쳐 지나가던 순간.


나는 내가 신혼여행을 온 신부라는 것도,

같이 스킨스쿠버를 하러 온 남편은 물속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보트에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도,

내 나이도,

내가 살아왔던 시간들도,

이 모든 것들이 내겐 이 바닷속처럼 투명해졌다.


그날 내 마음속 어딘가에 꿈이 생겼다.

언젠가 바닷속을 자유롭게 유영하는 다이버가 되고 싶다고…


이날 잠시 가졌던 그 꿈은 호주에 와서 이룰 수 있는 듯했지만 임신을 했고, 이제는 어린아이가 둘이나 있는 엄마가 되면서 또 잠시 접어 놓았다.


고이 접혀서 존재가 희미해졌던 그 꿈이 하미나 작가의 [아무튼, 잠수]를 만나는 순간 다시 생명력을 얻고 내 안에서 팔딱팔딱 숨쉬기 시작했다.


하미나 작가의 솔직한 에세이는 독자에게 프리다이빙을 향해 꿈꿨던 로망에 현실이라는 거울을 비춰서 제대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준다. 겉으로는 멋있어 보이지만 속으로 들여다보면 무엇이든 쉽지 않다는 것을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드러내어 보여준다.


[다른 사람과 함께 훈련하는 스포츠라 어쩔 수 없이 뒤처지는 모습을 보여주며 남을 기다리게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 싫고 부담스러웠던 것 같다. 스쿠버다이빙만 그럴까. 지금도 무언가를 시작하기 전에 머릿속으로 안 되는 이유 리스트를 먼저 만드는 나를 본다. 할 수 없다고 결론을 미리 내리고 이유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러다 아주 가끔 용기를 내는 일이 생긴다. 그러면 많은 것이 달라진다.]

아주 가끔 용기를 내는 것은 하미나 작가뿐만 아니라 나도 그렇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용기를 내고 나면 나는 어느덧 성장해 있었다. 내게는 글 쓰는 것이 그랬다.


‘내 글 구려병’에 빠져 허우적 대다가도 막상 용기를 내어 한 자씩 적어 내려가다 보면 구린 글이지만 이런 글이라도 쓸 수 있는 내가 대견했다. 나는 그렇게 오늘도 쓰고 있으니 용기 내길 참 잘한 것 같다.


[못하는 연습, 내려놓는 연습, 욕심을 버리는 연습, 힘 빼는 연습을 계속 하고 있다. 마구 몰아치고 한계까지 몰아붙여 내가 성과를 내게 하고 성장시키는 방식으로 지내왔다. 그렇게 해서 좋은 결과들을 얻어왔지만 그보다 더 크고 넓은 것을 갖고 싶다. 오래 살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이야기를 많이 만들고 싶어서. 그러려면 지금과 같은 속도와 방식이어서는 안 됐다. 그걸 배우려고 보홀에 왔나 보다.]

하미나 작가가 이야기하는 ‘못하는 연습, 내려놓는 연습, 욕심을 버리는 연습, 힘 빼는 연습’이 과연 프리다이빙에만 필요할까? 이것은 오늘을 살고 있는 나에게 그 어느 때 보다도 필요한 연습 과제들이었다. 내가 가장 못하는 것들을 어쩜 그렇게 딱 집어 말씀하시던지… 읽으면서 ‘이제부터라도 해보자’라고 굳게 다짐했건만 흐지부지 된 걸 보면 나도 보홀에 가야 할까 보다.


[프리다이빙은 어떻게 보면 사치스러운 스포츠고 어떻게 보면 모든 것을 내려놓게 하는 스포츠다. 시간도 없고 돈도 없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는데 돌이켜보면 정말 그랬나 싶다. 여행을 다니며 만난 프리다이버 중 시간과 돈이 넘쳐나서 프리다이빙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보다는 바다 곁에 더 오래 머물기 위해 다른 것을 내려놓을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프리다이빙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근래 들어 미래에 대한 생각을 덜 하게 됐다. 목표를 정하는 일도 잘 하지 않는다. 다음 행선지는 길이 열리는 곳으로 따른다.]

‘길이 열리는 곳으로 따른다’는 것은 욕심을 과감히 버리는 경지에 오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닐까?


[프롤로그를 썼을 때 나는 프리다이빙이 두려운 상황에서 한발짝도 뗄 수 없을 때 앞으로 나아가는 법을 알려주는 스포츠라고 했다. 1부를 쓸 때는 프리다이빙이 분에 넘치는, 허락되지 않은, 사치스러운 삶을 얻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여정의 상징처럼 느껴졌다. 2부를 썼을 때는 힘을 주지 않고도 앞으로 나아가는 법을 가르쳐주는 경험 같았다. 프리다이빙은 이 세 가지 전부이면서 세 가지 모두 아닐 것이다.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나다. 이야기를 만들어내려는 내 손아귀 사이를 프리다이빙은, 바다는 언제나 유유히 빠져나간다. 자연의 속성이 그러하듯 말이다. 어쩌면 바다는 텅 비어 있다. 나는 잠수를 할 때마다 내가 배워야 할 것을 배우고 나온다. 그리고 부이로 올라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배웠는지 말이다. 그 과정에서 나는 어디에도 도착하지 않는다. 어제의 깨달음은 오늘의 편견이 될 수도 있고 오늘은 슬펐지만 내일은 기쁠 수도 있다. 그냥 계속 해야 할 일을 한다. 다만 전보다 나다운 방식으로.

다음 잠수에서는 무엇을 발견하게 될까?

준비호흡을 시작한다. 몸에 특별히 긴장이 서린 곳은 없는지 느껴본다.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고 또 내쉬며, 편안하게 릴랙스…]

이 책을 읽는 독자는 내내 고민을 할 것만 같다. ‘나다운 방식’이 무얼지…

나는 어떤 것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어떤 이야기를 만들며 살아가고 싶은지…

책을 읽는 내내 내가 했던 고민들이다.


먼지 켜켜이 쌓여있던 꿈을 끄집어내어 먼지를 툭툭 털어내고 독서라는 간접 경험을 통해 인공호흡을 해주고 간신히 살려 놓았다.


이제 이 책을 덮는 나는 다이빙을 향한, 바다를 향한

내 꿈을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하려 한다.


삶에서 한 번이라도 다이빙을 향한 설렘을 느끼셨던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언젠가 바다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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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밀리의 서재,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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