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자아를 뒤집어쓰고 있을 때

나는 무얼 잘하지?

by YJ Anne

밥 대신 바나나를 네 개째 먹겠다는 다섯 살 2호에게 '오케이'를 외치며 바나나를 먹기 좋게 다시 잘라준다. 물론 지금 네 개째는 아니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2개, 브런치를 먹고 난 후 저녁 먹기 전 딱 배고픈 시간 5시에 2개째를 요청하고 있다.


이럴 때마다 사실 나는 고민한다. 아이의 고집대로 줘야 하나, 아니면 조금 강요를 해서라도 참게 하거나 다른 것을 먹어야 하나. 하지만 나는 이내 아이의 말을 들어줄 수밖에 없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했던가? 나를 닮아 한 번 마음먹은 것을 잘 바꾸지 않는 아이에게 나는 못하는 것을 할 수 있게 만드는 일이란, 차라리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기적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바나나를 잘라서 아이에게 가져다주고 읽던 이화열 씨 에세이를 펼쳐 들었더니 이런 구절이 있었다.


가끔 누가 아이 둘을 프랑스 최고 고등학교나 그랑제콜에 보낸 비결을 묻는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이렇게 대답한다.

"잘할 수 있는 것으로 아이를 기쁘게 해주세요. 나는 진심으로 크레프를 만들었어요."

-[지지 않는 하루] by 이화열-


아이 반가워라. 잘할 수 있는 것으로 아이를 기쁘게 해 주라는 작가의 말에 나는 내심 반가움에 미소 짓는다. 사실 내가 엄마로서 잘하는 것은 별로 없다. 그나마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을 꼽아보자면 음…. 뭐랄까. 웬만하면 원하는 것을 잘 수긍해 주는 것? 순간적으로 욱하는 성질을 쉽게 내보이지 않으려 숨을 크게 세 번씩 쉬는 것 정도랄까?


단, ‘수긍’이라는 것엔 조건이 달려있다. 안전에 관련된 것이 아니어야만 거의 90% 수긍해 준다. 안전하지 않다고 판단되는 것은 절대 들어주지 않는다는 것을 아이들도 수많은 경험을 통해 이미 알고 있다.


나의 아이들은 아직 킨디와 3학년이어서 공부라는 것에 아직 신경을 쓰진 않는다. 물론 여기도 여러 학원을 다니는 아이들도 상당히 많다. 우리 1호와 2호도 공부 잘하는 아이들만 간다는 셀렉티브 하이스쿨을 들어간다면 나도 참 좋겠지만 그건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일임을 안다.


공부도 건강도 모두 아주 좋은 결과를 만들어가며 살면 참 좋겠지만 나는 그런 바람을 강요하지 않고 은근하게 깔아 두고 싶다. 그런 마음을 담아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으로 아이들의 환심을 사려한다.


바나나를 자르는 이 자그마한 과일칼에 사심을 담아 썰어보는 엄마의 일기 읽어주셔서 오늘도 고맙습니다.

08.02.2026 Sun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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