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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J Anne Jan 29. 2023

글 쓰며 행복한 불량엄마랍니다.

‘비교’하는 걸 참으로 싫어하는 나인데도 가끔은 이 ‘비교’라는 단어 때문에 나 자신이 초라해 보일 때가 있습니다. 나라는 인간으로 살아갈 때보다는 엄마라는 이름으로 살아갈 때 종종 ‘비교’라는 단어가 내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와 가운데에 떡하니 자리를 잡습니다. 제가 호주에 살고 있지 않고 한국에서 엄마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었다면 제 자존감은 더 추락했을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하곤 합니다. 외부로 보이는 시선을 더 감당해야 하는 문화는 제게 늘 맞지 않는 옷이었으니까요.


인스타, 블로그, 페이스북 등 인플루언서들이 등장하는 소셜미디어를 들여다보면 어쩜 하나같이 아이들에게 뜨거운 열정을 다해 사랑하는 모습이 보이는지 그렇게 번쩍번쩍한 사랑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제 사랑이 가끔 초라해 보일 때가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그분들에 비하면 아이들에게 영양가 풍부한 식단도, 열정적으로 공부를 시키는 것도, 영상매체의 노출을 막기 위해 체계적인 다방면의 자극을 주는 것도 못하는 엄마이기 때문입니다.


저도 처음부터 불량엄마 모드는 아니었습니다. 1호를 낳고 나서 2살까지 티비를 보여주지 않는 것이 좋다는 조언을 따라 최대한 영상매체 노출을 막았으며, 책 읽는 아이로 키워주고 싶어서 열심히 읽어주기도 하고, 싫다고 마다하는 식탁 위에 앉혀놓고 제발 한 입만 먹어주기를 바라며 설득+꼬시기+엄포 놓기를 무던히도 했었습니다.


그렇게 노력을 하던 제가 어느 날 거울 속의 나를 바라보며 불량엄마를 선언하던 날이 있었습니다. 그날은 아이가 제가 차려준 음식을 한 자리에서 두 번이나 거부하던 날이었습니다. 나름 정성을 다해 차린 식판을 두 번이나 먹지 않겠다고 주방으로 가져다 놓는 아이를 보다 화가 치밀어서 끓어오르는 열을 식히려 화장실로 향했습니다. 저는 가끔 주체할 수 없는 화를 느끼면 양치질을 하러 갑니다. 칫솔에 치약을 묻혀 입안을 구석구석 닦다 보면 어느새 생각도 정리되고 상쾌해진 입안처럼 마음도 한결 나아지곤 하기 때문입니다. 그날도 어김없이 저는 양치질을 하러 화장실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거울 속의 저를 마주 보았습니다.


거울 속에는 제가 잘 알고 있던 참을성 많은 저의 모습은 간데없고, 한 껏 열받은 하마처럼 벌건 얼굴로 씩씩대는 여자가 있었습니다. 어른들도 채소를 맛없다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과연 아이의 입에 모든 채소가 맛있게 느껴질 수가 있을까요? 그것이 교육으로 과연 가능한 걸까요? 하다못해 함께 살고 있는 남편조차 국에 들어가는 대파를 골라내느라 바쁜 데 내 뱃속으로 낳은 아이라고 다를까 싶었습니다. 영양소를 골고루 챙긴답시고 정성 들인 상차림에 아이의 취향은 고려하지 않고 엄마의 욕심만 담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다시 하마처럼 씩씩대고 있는 여자를 바라보자니 속상함이 밀려왔습니다. 맛있게 먹어주지 않는 아이에게 화가 나는 제 자신이 싫었고, 내 아이를 고운 시선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이 상황이 참 속상했습니다.


그 순간이었습니다. 제가 불량엄마가 되겠다며 거울 속의 그녀에게 선언한 것이.

영양소가 골고루 들어간 균형 잡힌 식사보다 아이가 원하는 음식을 먹는 즐거운 식사 시간을, 책을 좋아하지 않는 아이를 보며 속상해하기보다는 아이가 좋아하는 기차놀이를 함께 하는 것으로, 티비를 보고 싶어 하는 아이에게 정해진 시간만큼 보여주고 억제시키기보다 원하는 때는 언제든 틀어주고 걱정되는 순간마다 다른 놀이로 관심을 빼앗는 것으로 해보자 다짐했습니다.


똑똑하고 건강하고 참을성이 있는 아이로 키우는 것보다는 조금은 느슨하고 느긋하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생각하는 아이로 키우며 엄마의 멘탈 건강을 챙겨보자 싶었습니다.

그렇게 3살 때부터 5살 반인 지금까지 느긋한 시간을 걸어왔습니다. 그래서 성공했냐고요? 아직까지도 마음은 또래 엄마들의 치맛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아이에 대한 온갖 바램으로 이리 휘청 저리 휘청 하지만 지나온 시간 동안 아이를 찡그린 얼굴로 화내며 마주하기보다는 바라보며 웃는 시간이 더 많았으니 실패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한 가지 음식에 꽂혀 주구장창 그 음식만 삼시세끼 먹어대더라도 크게 일주일 단위로 보면 결국 골고루 먹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지금 차려 놓은 한 끼의 식사에 모든 것을 담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고 나니 아이도 저도 한결 편해진 마음으로 식사시간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부단 식사뿐만이 아니라 책도, 티비도 저에게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책을 많이 읽어주는 것보다는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의 책을 직접 고르게 하고 그 책만 주구장창 보더라도 ‘책’이라는 것을 들춰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티비와 유튜브는 친절한 선생님의 노릇도 대신해주었습니다. 아이는 파닉스도, 숫자도, 온갖 관심 있어 하는 분야의 정보들을 원하는 만큼 조금 더 깊이 찾아보며 스폰지처럼 쫘악 쫘악 흡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2년 반의 시간이 흐른 만큼 아이의 머리도 커졌고, 그만큼 더 고집스레 반항하기도 하지만 제가 선택한 불량엄마의 타이틀 덕분에 오늘도 아이와 웃으면서 하루를 보낼 수 있었습니다. 물론 모든 순간에 깔깔깔 웃음이 넘치지는 않는다는 사실은 굳이 말씀드리지 않아도 아시지요?


그리고 1호의 시간을 지나 2호를 만나고 나서는 조금 더 여유로워졌다고 할까요? 저는 여러 면에서 경력은 절대 무시할 수 없다는 말을 더 신뢰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지금의 저는 1호 때보다 모든 면에서 더 느긋한 시선으로 2호를 바라보며 양육하는 중이거든요.


등단한 ‘여류 작가’도 아니면서 감히 읽고 쓰는 나는, 아이들 사교육비보다 내 책값과 내 공부에 더 많은 돈을 지불하는 나는, 그냥 한마디로 이상한 사람이었다. 느끼고 꿈꾸고 회의하는 감수성 주체로 살아가는 여자 인간은, 있어도 없는 존재이자 이 시대에 사라지는 종족이었다. 여기 사람 있다, 는 내게도 유효한 외침이었다. 이렇게 계속 살아도 괜찮은 걸까, 정말 나는 나쁜 엄마인가.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가는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 다만 내가 나를 설명할 말들을 찾고 싶었다. 나를 이해할 언어를 갖고 싶었다. 뒤척임으로 썼다. 쓸 때라야 나로 살 수 있었다. 산다는 것은 언어를 갖는 일이며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는 하이데거의 말을 기억했다. - <글쓰기의 최전선> by 은유



어느 날 <글쓰기의 최전선>을 읽다가 은유 작가님의 글에서 저를 보았습니다. 정말 바로 지금의 저에게 말씀하시는 줄만 알았습니다. 내 마음이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모두 여기에 적혀 있었습니다.

언제부터였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지만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은 부모의 희생을 강요하기보다는 부모의 행복을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를 잘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부모인 자신이 잘 크는 것도 중요하다고 언젠가 김미경 선생님께서 강연 중에서 말씀하셨던 것도 기억합니다.


저도 행복한 엄마가 되고 싶었습니다. 아마도 불량엄마라는 타이틀을 제 멋대로 먼저 달아버린 이유도 세상에 보이는 모습이 걱정되는 마음에서 나온 행동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가 걱정해야 하는 것은 세상에 보이는 내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나를, 남편을, 그리고 아이들의 행복을 걱정해야 했습니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 보다 아이들의 눈에 보이는 나라는 엄마는 어떤 사람인지를 걱정해야 했습니다. 아이들 눈 속에 담겨있는 제가 행복해야 했으니까요.


그래서 제가 생각하고 실천에 옮긴 아주 잘한 일 중에 하나는 글 쓰는 엄마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글을 쓰면서 가족과 그 안에 있는 나를 마주 보면 행복했습니다. 나만 제자리걸음이 아니라 뒤쳐지고 있다는 생각으로 우울했던 자존감도 많이 회복되었습니다. 글을 쓰며 행복한 자아를 다시 찾으니 아이들의 눈에 비친 제 얼굴도 웃고 있었습니다.


모든 ‘불량엄마=행복한 엄마’는 아니겠지만 때로 부모가 자신의 행복을 위해 아이들에게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다가간다면 서로를 바라보는 얼굴에 조금 더 미소가 지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런 바램으로 오늘도 저는 글 쓰며 노는 행복한 엄마로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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