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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J Anne Dec 26. 2023

한 여름의 크리스마스를 예상했나요?

비와 함께 라면 해변보다는 집이 최고인 우리


남반구인 호주로 이민을 도전한다고 했을 때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한 여름의 크리스마스였어요. 물론 남편과 저도 그랬죠.


우와~ 한 여름의 크리스마스라고?

어떨까? 뜨거운 햇살 아래 마주하는 산타와 루돌프 그리고 눈사람은 있을까?

기대를 잔뜩 품었던 우리의 첫 크리스마스는 11년이 지난 지금도 잊지 못하는 유일한 크리스마스가 되었어요.


당시 어학원을 다니고 있던 남편과 저는 호주의 크리스마스 휴가는 적어도 2주나 되는구나 라는 사실에 입을 떡 벌려 놀라버렸고, 심지어 크리스마스 날인 25일은 일 년 내내 닫지 않을 것만 같은 슈퍼도 문을 닫는구나에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답니다.


호주는 그런 나라입니다.

크리스마스는 부활절과 함께 호주의 명절이에요. 한국으로 치자면 구정과 추석이랄까요?

부활절에는 금, 토, 일, 월 이렇게 4일을 연속으로 쉬고요, 크리스마스에는 25일 당일과 26일은 박싱데이라는 면목으로 연일로 쉽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회사들은 크리스마스와 해피뉴이어를 겸해 거의 2주간 회사를 닫는 답니다. 이때는 배송 업체 대부분 쉰답니다.


이렇게 거의 대부분의 국민이 크리스마스 당일에는 가족과 함께 보냅니다.

일 년 중 가장 중요한 날이랄까요?

그래서 크리스마스에 대한 기대가 더 커졌나 봅니다. 우리는 호기롭게 어학원 친구들과 함께 바닷가 여행을 꿈꿨습니다. 해변에서 서핑하고 있을 산타를 기대하며 크리스마스 아침을 맞이했죠.


그런데 현실은 어땠냐고요?

처참했어요.


분명 전날만 해도 한여름 날씨였기에 뜨거운 태양을 예상하고 아주 얇은 카디건을 챙겨 입고, 비치에서 즐기려고 맥주도 씨~~~~ 원하게 준비해 가방에 잘 챙겨두고 아침부터 부지런을 떨어 유부초밥과 갖가지 도시락을 쌌죠.


그런데 호주에서 가장 유명한 맨리 비치로 가려고 배를 타러 가는 길, 하늘은 잿빛으로 컴컴해지고, 심상치 않은 바람이 불기 시작했어요. 맨리 비치로 가려면 시티에서 페리를 타고 가야 했는데… 페리에 타서는 바람이 따귀를 때리기 시작했다니까요.


드디어 항구에 도착해서 내리고 나니 해변은 삭막하기가 그지없었답니다. 왜냐하면 그때부터는 그냥 바람이 아니고 비바람이 휘몰아치기 시작했거든요. 혹시 비가 올지도 모른다는 일기 예보에 우산을 챙겨 왔기에 천만다행이었어요. 그마저도 없었으면 정말 딱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될 뻔했다니까요. 아! 아니요. 정말 딱 물을 제대로 뒤집어쓴 생쥐가 되기는 했어요. 비바람이 따귀를 마구 갈겨대니 우산은 무용지물이었거든요.

그렇게 맨리에 갔다가 삭막한 바다를 마주하고 같이 영어를 못하는 어학원 친구들과 ‘Are you okay?’만 서로 연발하며 조금 더 작지만 쉴 곳이 있는 리틀 맨리로 가기로 했어요.

그곳이라고 달랐을까요?


아! 다른 점은 한 가지 있었네요. 맨리보다 더 작은 해변이어서 그런지 파도가 너무 세지 않아 이 비바람에 맞서 서핑을 하는 서핑족이 있었으니까요. 심지어 산타모자를 쓰고 반팔에 반바지 산타 옷도 챙겨 입어 멋짐 폭발하는 서핑러가 있었다니까요.

아… 그때 사진을 찍어뒀어야 하는데 말이죠.


참 아쉽지만 여튼 우리는 다행히 서핑족들을 만나고 정말 호주의 크리스마스는 한여름에 산타가 해변에서 서핑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니까요.

그렇게 비바람을 온몸으로 처맞으며 즐긴 첫 크리스마스를 맞이하고 난 후 다음 해에는 어떨까? 기대했지만 다음 해에 제대로 알아챘답니다. 신은 한 여름의 크리스마스를 좋아하지 않으시는구나. 어쩜 매번 그렇게 날씨가 우중충한지… 비가 오거나 안 오거나 일뿐 기분을 제대로 망치는 습기 넘치는 흐린 여름날이 매년 찾아왔답니다.


올해라고 달랐을까요?

크리스마스이브인 어제부터 비바람이 몰아치고, 오늘은 흐린 날에 중간 간격으로 빗방울이 내렸답니다.

대부분의 쇼핑센터도, 슈퍼마켓도, 식당들도 문을 닫는 12월 25일 호주에서는 집에서 가족들과 파티를 하면서 뒹굴뒹굴 대는 게 가장 행복한 일이라는 걸 이제는 알아버렸어요.


마치 대단한 비밀을 깨우친 것처럼 이렇게 글까지 쓰고 있지만

특별한 날도, 평범한 날처럼.

평범한 매일도 아주 아주 특별한 날처럼 보내는 게 행복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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