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전방 GOP의 동계 모노레일 부식작전!
"GOP OO소초까지 올라가는 계단이 4,000개라는데 괜찮겠어요?"
4,000개 계단이라... 솔직히 감이 잘 오지 않았습니다. '계단이 무척 많은 모양이네~'라는 막연한(혹은 만만한?) 생각이 잠시 떠올랐지만 걱정으로 이어지진 않았습니다. 오히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담당 소령님의 걱정스러운 목소리는 근거 없는 전투력(?)를 불러일으키는 자극제가 되었죠.
"까라면 까야죠! (웃음)"
12사단 을지부대에서 차량으로 1시간 30분 이동 후 내린 최전방은 무척 고요했습니다. 영하 10도 이하로 떨어진 강추위가 만드는 칼바람 소리가 귓가를 맴돌 뿐이었죠.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산정상까지 끝없이 펼쳐진 계단의 행렬은 짧은 감탄사를 내뱉게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었고요.
하지만 하체부실한 민간인이 오르기에 이 계단은 숫자도 숫자였지만 경사 또한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가파르더군요. 그동안 수많은 취재와 촬영을 진행하면서 나름 고생부심(?)을 갖고 있었지만 이날의 현장은 단언컨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힘든 순간이었습니다. 아마 앞으로도 이보다 극한 상황을 만나는 건 아마도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고요.
계단은 무척 친절(?)했습니다. 100개를 오를 때마다 100, 200 같은 커다란 숫자로 걸어온 길을 알려주고 있었거든요. 300이라는 숫자를 보는 순간, 살짝 겁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몸이 느끼는 체력의 저하를 고려할 땐 1,000개는 올라온 것 같았거든요.
400 계단을 간신히 넘고 500 고지(?)로 향하면서 다리가 마음과는 달리 제대로 움직이질 않기 시작했습니다. 숨은 더욱 거칠고 가빠졌죠. 아마 제 숨소리만 음성으로 녹음해 들려준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에베레스트 산을 무산소 등반하는 산악인이라는 답을 내놓았을지도 모르겠군요.
점점 쉬는 시간이 많아졌고 길어졌습니다. 추위보다도 입고 있던 옷마저 무겁게 느껴져 벗어던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동행하던 장병1은 카메라 가방을, 장병2는 카메라를, 장병3은 겉옷을 들어주며 나름 고통에 신음하는 한 민간인을 도와주려고 했지만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죠. 철책을 붙잡고 "전쟁이 나도 나 못 움직일 것 같으니 자기들만이라도 먼저 올라가세요~"라는 말 같지도 않은 말에 한 참모가 위로(?)의 말을 건넸습니다.
작가님, 괜찮습니다! 예전에 여기 방문했던 엄홍길 대장님도
몇 번(이고) 쉬었다 올라가셨습니다!
여기 장병들은 산정상을 넘어 OO소초까지 가는데 40분이면 충분하다는군요. 아~ 저는 2시간 넘게 방황하다 겨우 도착할 수 있었고 생활관에서 잠깐 앉아 쉰다는 게 제 코 고는 소리에 놀라서 깨는 민폐를 끼치고서야 제 정신을 차릴 수 있었습니다.
당시 도착했던 OO소초는 워낙 높고 험한 고지에 위치하고 있다 보니 도로 자체를 낼 수가 없다 보니 부식을 운반하는 모습도 여느 GOP와는 다른 진풍경이 펼쳐집니다. 부식을 운반하는 건 차량이 아닌 바로 모노레일이라는 사실이죠. 행여 눈이라도 많이 내리는 날에는 이 모노레일도 작동하는 게 불가능해 장병들이 직접 4,000여 계단을 오르내리며 부식을 옮겨야 한다는데요, 강인한 정신력과 체력으로 무장한 대한민국 1% 장병들이 경계를 서고 있는 최전방 GOP의 동계 모노레일 부식작전 촬영은 이렇게 담을 수 있었습니다.
근무하고 싶다고 해서 가능한 것도 아니고 체력과 인성을 겸비한 상위 1% 장병만이 선발돼 근무하는 최전방 GOP. 그 중에서도 차량이 올 수 없을 정도로 힘든 환경에서 근무하는 장병들의 자부심을 꼭 한번 다시 만나고 싶......지만 다시 한번 방문할 기회가 생긴다면 예전처럼 가겠다는 답이 쉽게 나올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건 아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