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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엄마, 토닥토닥

특별한 한끼

by 미오


몸이 천근만근. 오랜만에 마법에 걸려서인지 물적신 스폰지 같습니다. 온종일 더디게 흐르는 시간 탓에 저녁은 무조건 간단히 먹이고 일찍 쉬어야지 몇 번이고 다짐했지요. 웬만하면 집밥을 먹이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오늘은 쉬고 싶은 날. 간단식을 제안해보렵니다.

母: 돈가스 포장해갈까?

子: 다른 거 없어요?

母: 치킨이나 피자 같은 거...

子: 그냥.. 비빔밥 해 주시면 안 돼요?

母: 비빔밥? 그래 알겠어..




며칠째 다 비워내지 못한 아들의 밥공기가 스칩니다. ‘입맛이 없어요. 죄송해요.’라며 밥을 반도 먹지 않았지요. 밥 생각 없을 땐 잘 먹지 않는 아이. 물 한 모금 먹지 않고도 몇 시간을 버팁니다. 뭔가에 몰입하면 먹는 것도 잊고. 비스킷이라도 몇 조각 먹고 배를 채우면 다른 음식을 허락하지 않는 입 짧은 아이가 요청한 메뉴는 거절할 수가 없습니다.


식욕이 생겼다는 건 마음속을 짓누르던 고민이 조금은 사라졌다는 걸 의미합니다. 뭔가 걱정이 있는 듯 보였는데 내색하지 않는 사춘기니까. 먹는 것을 잘 안 먹을 땐 한 번 더 살피게 됩니다. 힘들다는 신호를 주는거라 짐작하지요.

먹고 싶다는 욕망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 욕망일거예요. 식욕은 의욕이라 말하며 식욕을 잃고 삶에 대한 애착심이나 정열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얘기준 친구가 생각났습니다. 일부러 억제하는 다이어트가 아니고서야 돌도 씹어 먹어야 할 나인데. 입맛이 없다고 제대로 안 먹는 아이를 보고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하루 종일 무거웠던 몸의 컨디션은 뒷전. 모성이란 이름의 초인적 힘이 발휘되는 순간입니다. 잰걸음으로 작은 슈퍼를 지나 큰 마트로 이동하지요. 신선한 재료를 담아야 하니까요. 바구니에 채워지는 색색의 야채들. 콩나물. 오이, 시금치, 애호박, 다진 소고기 등등. 비가 오니 조금만 사야지 했건만 상큼한 과일까지 사고야 맙니다.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특별한 동기가 부여되는 이런 날은 정성이란 조미료가 듬뿍 들어갑니다. 매일의 밥상이 이렇다면 좋겠지만 오늘은 특별한 밥을 짓는 날이니까요.

오늘의 한 끼는 '입맛 없음' 이란 단어로, 허기진 배를 채울 수 없었던 밥공기가 되지 않도록 해야합니다. 미션 수행을 위해 조금 더 마음을 다해 준비해 볼겁니다.

아플 때 뭇국을 찾고, 입맛 없을 때 야채가 듬뿍 담긴 비빔밥과 된장국을 찾는 아이. 그 아이에게 힘이 되는 밥상을 준비하고 싶다는 바램으로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데치고 무치고 볶고 바쁜 손놀림으로 완성한 비빔밥에 화룡점정 계란프라이까지 얹어서 한 그릇 비벼주니 잘 먹습니다.

맛있다는 한마디에 힘겨웠던 컨디션도 용량 초과 비타민을 먹은 듯 회복됩니다. 입가심 과일까지 마다하지 않고 다 먹는 모습을 보니 안심이네요


남이섬 조각상(장강과 황하)


세 아이의 엄마'. 어깨에 항상 무거운 짐을 멘 듯한 단어입니다.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는 말로 무장을 해보지만 부담백배. 어른이지만 엄마이지만 '어른 엄마'로는 자신이 없었습니다.

어쩌다 어른이 되고 엄마가 되었는데 가끔은 투정을 부립니다. 집안일의 수고로움을 외면하는 배우자에 대한 실망감 때문이었을까. ‘수고했어,. 오늘도 힘들었을 텐데..’ 이런 격려의 말이 고팠습니다. 허기진 단어였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그런 위로 따위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제... 어른 엄마가 된 것인가?)

아무렴 어떤가요. 음식으로 위로받고 싶을 때, 정성이란 조미료를 듬뿍 넣어 마음을 어루만져 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한걸요.

어른 엄마니까 스스로를 칭찬해 줍니다. 토닥토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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