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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오 김세미 Oct 31. 2023

지팡이의 의미

따뜻한 시선으로

경비 아저씨가 흐뭇하게 바라보고 계시는 시선을 좇아본다. 분홍색 지팡이를 짚고 걸음을 걷고 계신 어르신이 보였다. “지난번에 그 할머니 기억나죠? 그때 주도로 횡단하시던 분”


기억을 더듬어 보니 스쳐 지나가는 분이 있다. 주도로를 위태위태 지나가셨다. 아파트 안에서도 차가 다니는 주도로는 길을 건널 때 조심을 해야 한다. 허나 길게 대각선을 그리며 지나던  어르신은 무조건 앞만 보고 직진이셨다. 그러니 경비 아저씨가 혹시나 하는 사고에 대비해 주의를 주신다.



 뒤에 차가 기다려도 아랑곳 않으셨다. 멀리서 봐도 걱정될 정도였다. 한적한 시간이라 다행이라 생각은 들었지만 내심 걱정이 됐다. 경비 아저씨는  볼 때마다 염려가 돼서 지나가실 때  한 번씩 봐드린단다. 건강을 위해 산책을 하신다는데 저렇게 다니시는 건 위험천만한 일이지 않느냐고 걱정하셨다.  따님이랑 얘기하는 걸 들었는데 " 내 나이 80도 안됐는데 . 무슨 지팡이를 짚냐고 역정을 내시더라고 "


따님도 못 이기는데 아저씨가 섣불리 말씀을 드리면 언짢아하실 테니 말을 아꼈단다. 어느날부터 할머니 걸음걸이가 바뀌어 자세히 보니 지팡이를 짚고 계셨단다. 어르신들의 지팡이를 당연하게 생각했었는데 자존심과 맞바꾼 분들도 있는지 알지 못했다. 살면서 버려야 할 자존심에 지팡이도 포함되는 거였다.


경비 아저씨와 얘기하며 관리실로 향하는데 통장님이 지팡이 하나를 가지고 오신다. 경로당 어르신 지팡이가 키에 안 맞는다고 조금 잘라줄 수 있냐고 하셨다. 선물을 받으셨는데 길이가 길어서 수선이 필요하단다. 길이 조절이 가능하지 않은 지팡이니 어쩔 수 없다고 하시길래 관리실로 가져와 보셨단다.


“제가 금방 해드릴게요 그런데 혹시 지팡이 사용하는 어르신 키가 어느 정도 되시나요? 키에 따라 지팡이 길이가 달라져야 하거든요 ”


예의 바른 기전 반장님 어르신의 키를 묻는다. 어르신의 신장이 160이라 말씀해 주시니 신장 나누기 2를 하고  3cm를 더하면 본인에게 딱 맞는 지팡이 길이라고 하신다. 어찌 그리 잘 아느냐고 엄지척해주니. 할머니 지팡이를 선물해 드리며 검색해 봤었다고 우쭐해하신다. 꼼꼼한 통장님이 표시해 온 지팡이 길이와 정확히 일치했다. 기존에 쓰시던 사이즈를 표시해 온 거라 했다. 어르신들의 키에 따라 지팡이 길이도 달라져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지팡이 가지러 오면 전달드리라는  말씀을 덧붙이는 통장님이 가신 뒤, 1시간쯤 지나니 지팡이의 소유주가  등장. 반색을 하며 감사 인사를 전하시는  분에게 기전 반장이 한 마디를 보탠다.  어르신 한번 쥐어보세요 하더니 내친김에 지팡이 특강을 해주신단다.


내려갈 때는 지팡이가 1번 아픈 발이 2번, 덜 아픈 발 3번이에요. 올라갈 때는 지팡이 다음으로 덜 아픈 발이 먼저고요. 그리고 지팡이를 짚을 때는 발끝에서 20센티 앞이 좋데요. 발하나 크기를 지팡이에게 보낸다 생각하세요.  


어쩜 그렇게 찬찬하냐고 칭찬을 하신다.  오래 걸으면 다리가 저려 힘들다 하니  왜 지팡이를 거부하냐고 딸의 타박을 받으셨단다. 딸의 간곡한 부탁을 받고 마지못해 백기를 들었다는 얘길 해주셨다.

 지팡이에 얽힌 사연을 듣다 보니 지팡이 짚는 내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멀지 않은 미래다. 지팡이 짚는 어르신들을 조금 더 따듯하게 바라봐야겠다.


지팡이에 의지한 노부부와   앞서가는 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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