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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오 김세미 Oct 30. 2023

하찮은 건 없단다.

단풍나무와 매미의 전리품


아파트 나무들이 옷을 갈아입고 있다. 성격 급한 벚나무와 느티나무가 떨군 나뭇잎으로 바닥이 울긋불긋하다. 예닐곱살 쯤 되보이는  꼬마가 바람에 날리는 나뭇잎을 잡으려고 열심이다.


 나뭇잎이 뛰어다녀요, 뛰어다닌다고? 잘 보세요. 바람이 부니까 통통 뛰어다녀요.  


꼬마 시인 덕분에 나뭇잎을 관찰해 본다. 바람에 뒹구는 듯 보이는 낙엽들이  뛰는 것 같기도 하다. 까만 눈동자에 힘을 주고 말하는 아이가 마냥 귀엽다. 나뭇잎처럼 춤추는 아이다.


대나무 빗자루로 낙엽을 쓸고 계신 외곽 반장님이 보인다.  나뭇잎이 비에 젖으면 미끄러워지니 경사로 부근의 낙엽을 치우신다고 했다. 비를 만나면 애물단지가 될 터이니 마냥 방치할 수는 없다. 부지런한 비질 덕에 화단 측구 한편에 수북이 쌓이는 나뭇잎. 좀 전까지 바닥에 꽃을 만들던 단풍이  마대자루에 쓰레기처럼 넣어질 위기다.


하지만 회양목 위에 떨어진 나뭇잎들은 존재감을 발한다. 벚나무 잎들이 꽃처럼 수놓아지니 한 폭의 그림이 된다. 사람을 홀릴 듯 피었던 벚꽃의 화려한 자태가 떠올랐다. 하찮게 보일지 모를 낙엽이 되었을 지언정  잎을 떨군 나무의 모습은 홀가분해 보인다. 숙제를 끝냈다는 표정이다.


벚꽃이 봄의 화려함을 떠올리게 한다면 가을엔 뭐니 뭐니 해도 단풍이다. 타오를 듯 붉게 물든  단풍은 가을의 상징. 단풍나무가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겨본다. 아파트 산책로 아랫부분에 위치한 나무다. 아직까지 초록색의 자태다.


제일 마지막에 모습을 드러내겠다는 심사인가. 주인공은 원래 늦게 입장하는 것 아니겠냐는 듯, 아직 물들일 생각 없다고 새초롬하다. 철없이 핀 노란 개나리꽃도 있는데 단풍은 아직 아니지 않냐고 한다. 그래도. 아파트에서 제일 예쁜 빨강을 자랑하는 나무라 보러 온 거라니 우쭐해 한다.


 안부를 묻는 내게 매미 허물을 보여준다.  두 개가 이웃하게 나뭇잎에 붙어 있었다. 나무를 찾아와 허물을 벗겠다고,  당분간 신세 지겠노라 부탁의 말을 건넸을까? 양해를 구하고 벗어놓은 허물이 아닐지라도 애초에 내치진 않았을 거다. 불편한 기색 없이 자리를 내어줬음에 틀림없다. 아직까지 떨구지 않고 품고 있는 걸 보면 당연하지 않은가. 후한 인심이다.


나무는 빨갛게 단풍이 들 때까지 매미의 잔재를 품어 줄 것이다. 하찮게 여기지  않는 것이다.  친구의 전리품이니 기꺼이 챙겨주고 있는 것이겠지. 바람에 날리듯 잎들을 떨구는 날, 매미 허물도 떨어지려나? 붉은 단풍이 자태를 뽐내고 잎이 시들해지면 매미의 전리품도  땅으로 떨어질 지 모른다.  기한의 행복을 즐기는 불청객이지만 나뭇잎에 붙어있으니 그나마 어여삐 봐주게 된다.


여름 한철 목청껏 울어댔을 매미는 어디로 갔을까. 새 생명을 잉태하느라 땅속으로 들어갔을까. 문득 매미의 행방이 궁금해진다. 붉은 단풍이 물드는 날. 매미의 전리품을 한 번 더 확인하러 와야겠다.  하찮음의 기준은 내가 만드는 것이니.


단풍잎에  붙은 매미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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