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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오 김세미 Oct 29. 2023

향원정의 가을

시월의 어느멋진 날을 선물받다.


[궁궐 산책]   경복궁에서 제일 아름다운 곳이 어딜까요? 무심코 던진 질문에 향원정 가을 풍경이요.라는 대답을 들었다. 황량한 겨울이었고 경회루에 비해 규모도 작으니 그림이 그려지진 않았다. 하지만 주저함 없이 얘기하는 궁궐 해설사님의 말씀을  신용했다. 가을에 꼭 방문해 보라고 거듭 강조하셨었다.  가을을 좋아하니 시월말쯤 가자고 나름의 간택일을 정했다.



책 한 권과 텀블러를 들고 집을 나섰다. 한 시간 가량 가야하는 거리. 초봄과 여름에도 나 홀로 궁궐행을 감행했다. 궁궐 산책에 재미를 붙였기에 오늘도 커피를 친구 삼아 궐내를 거닐었다. 궁궐에 들어서면 편안하다. 전생에 생각시 정도는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한복이 거추장스럽다 생각하며 여기저기 뛰어다니지 않았을까 혼자만의 상상에 빠진다.


향원정은 경복궁 궐내 지도에서 보면 가장 북쪽 끝에 있는 건청궁  앞에 위치한다. 경회루가 큰 연회를  위한 규모있는 곳이라면  향원정은 소박하고 아담한 규모다.  근정전을 향하지 않고 오른쪽으로 난 문을 통해 외곽으로 돌면 몇백 년 됐을 듯한 커다란 은행나무 몇 그루를 만나게 된다. 노랗게 물든 나무는 햇빛을 받으니 황금색으로 빛났다. 조금더 걸으면 초록색의 정자가 보인다. 향원정이다.



가을 옷을 입은 향원정은 단아했다. 한복을 입고  온 외국인들은 사진이 잘 나오는 포지션에 줄을 서 있었다. 단체 관광객이 모인 곳이 확실히 명당자리. 눈여겨 두며 이웃한 건물인 건청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한 달간 개방행사를 했을 때 두 번이나 찾았던 곳이니  친숙했다. 인사를 하고 오려는 거다. 건청궁 안 추수부용루(秋水芙蓉樓)’ 내부에서  향원정을 바라봤었다.  ‘가을 연못에 핀 연꽃을 보는 누각’ 이란 뜻이다.  향원정 풍경이 그림처럼 보였던  누각위에서 다시금 가을을 느끼고 싶었는데  내부 개방이 안 되는  날이다. 아쉽지만 상상만 더할 수밖에.



 건청궁  내부에서 밖을 바라봤던 방향으로  마당을 둘러보았다. 건청궁에도 가을 풍경이 가득했다. 은은한 향기가 났다. 향기를  쫓아보니  모과가 탐스럽게 열려있었다. 무거울 텐데 하나 정도 선물로 주면 안 되냐는 듯 쳐다봤다.  자세히 볼 요량으로 매끈한 나무를 어루만졌다. 그런데  나뭇가지가 뻗어 나는  곳  깊숙이  모과 하나가 박혀있었다. 주먹 두 개만 한 크기였다. 가을의 향기를 선물 받았다. 잊지 않고 찾아와 줬다고 내민 듯 했다. 건청궁의 모과나무와 인사하며 어서 오라 손짓하는 향원정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여전히 사람이 많다.  


향원정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멀찍이 떨어져서  여유 있게. 제일 좋은 각도에서  사진 한 장을 찍을 요량으로.  어이를 쥐고 맷돌을  돌리듯 천천히 돌았다.   어느 곳에서 보아도  고왔다. 노랑 주홍 빨강 초록 다채로움이 담긴 구절판 같았다.  한 바퀴를 돌고 적당한 자리에 앉아보니 물에 비친  정자의 모습이 또 하나의 그림이 된다.  물빛은  향원정의 풍경을 거울처럼 담아내고 있었다.  물에 비친  모습까지  또 다른 풍경으로 자리했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가을을  남기는 사람들  틈에 사진을 담아보았다. 어디선가 나직하게 울리는 음악소리. 가사 없이 연주곡으로 울려 퍼지는 곡에  귀를 쫑긋 세우게 된다. 시월의 어느 멋진 날이었다.  마음 속으로 가사를  붙여 보게 되는 곡이다. 멜로디를 선물한  주인공은 이미  지나간 후지만  허밍으로  내 안에 울려 퍼졌다. 향원정의 가을 풍경을 오감으로 담은  시월의 어느 멋진 날이다.



향원정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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