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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오 김세미 Nov 05. 2023

나뭇잎을 품어준 나무

그 소리를 들었다.

가을은 참 예쁘다. 바닥에 뒹구는 낙엽도 꽃처럼 보일만큼. 떨어진 나뭇잎의 양에 깜짝 놀라게 된다.  이렇게나 많은 잎을 품었었구나.


나무는 연둣빛 여린 잎을 진하게 물들였다. 짙은 초록이 될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차가운 바람이 다가와 그만하라고  귀앳말을 할 때까지.  잎을 위해 저 땅속에 응축된 기운을 끌어올렸다. 뿌리가 그만 좀 쉬자고 투정 부리는 소리도 못 들은체 했다.  마지막 가지에 있는 잎들이 제 모습을 갖출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이제 다 됐다고 힘겹게 헉헉대는 뿌리를 다독였으리라.

 



나무를 어루만진다. 눈을 감는다. 소리가 들린다.  이파리들은  '왜 우리를 내려보내느냐며' 투정 부리고, 나무는 ' 이 아이들 하는 얘기 좀 들어보라한다.


잎들은 좀 더 놀고 싶었다고 . 하늘을 친구 삼아 해와 달을 바라보던 때가 좋았다고 아우성이다. 한여름 시원한 그늘을 내어주니 칭찬받지 않았느냐고 공치사도 한다. 나무는  막무가내로 투정부리는 잎들에게 어찌하겠냐며 꾸짖는다.


바람을 원망스레 흘기더니 다소곳이 시선을 떨구는 잎.  받아들이기로 결심한 듯 낙하를 시작한다. 지켜보던 바람은 무사히 안착되도록 보드란 입김을 보낸다. 살포시 내려앉은 모습이 한복 치마를 펼친 새색시 같다고 속삭여준다.


잠자던 뿌리들은 지붕 위의 소란에  귀를 쫑긋 세운다. 수천수만의 잎들이 포근하게 내려오는 모습을 지켜본다. 이렇게 생겼었구나. 나뭇 가지에 다리미질한 듯 매끄럽게 빛날 수 있게 해준 것이 뿌리 덕분임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신의 노력을 알아달라며 서운함을 내비친다.


 나뭇잎은  바스락 바스락  소리내며 가루가 될 채비를 한다. 흙과 하나되어  뿌리를 어루만져줄 테다. 자신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구나 뿌듯해하는 뿌리의  모습을 그리면서.

.



바닥을 가득 채운  낙엽을 보니 나뭇잎과 뿌리의 이야기가 들렸다.  높은 가지든 낮은 가지든 차별을 두지 않았던 나무의 넉넉한 마음을  되새겨 본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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