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오 김세미 Nov 06. 2023

은은한 모과향

기분 좋은 은은함이 아침을 깨운다. 이 향기가 뭐였지? 눈을 뜨지 않은 상태에서 잠깐 생각에 빠진다. 아 맞다 모과였지! 하품하며 핸드폰을 더듬는 손이 바쁘다..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조금더 조금더 외치는 몸. 누워있고 싶다는 투정을 부린다. 실눈을 겨우 떠 시각을 확인한다. 올라가는 입꼬리. 아직은 여유가 있다. 행복한 15분이다.


 심호흡을 크게 해본다. 모과향이 은은하게 퍼진다. 눈을 뜨기 힘든 이 아침을 어쩐다. 이불 속에 꼼지락거리고 싶은 마음을 다독이며 친구가 보내준 카톡 속 음악을 재생해 본다. 시월의 어느 멋진 날이었다.

 

 늦가을에 향기를 더하는 모과와 함께하는 특별한 아침. 추억 세포까지 깨운다. 모과를 처음 만난 건. 초등학교 4학년 때다. 부모님이 과일 장사를 한다고 가끔 과일을 가져오던 친구가 있었다. 그날은 사과라 했다. 못생겨서 안 팔리는 거라며 내민 과일을 의심 없이 먹었던 아이들. 한 입씩 베어 물고 오만상을 찌푸렸다. 나도 나도를 외치며 못생긴 사과의 맛을 느껴본 그날. 향은 좋았지만 시고 떫었던 못생긴 사과가 모과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 후로 모과는 관심 밖 과일이 되었다.


  결혼 후, 단지를 돌다가 만나게 된 분홍색 꽃핀 나무. 많은 꽃이 피는 시기였지만 어린이날 선물을 준비하다 발견한 꽃. 그래서 더 기억에 남는다. 나뭇잎 빛깔도 고왔다. 제일 인기 많은 나무라고 얘기하던 경비 아저씨의 넉넉한 웃음도 생각난다.

  

 꽃이 떨어지면 빛깔 좋은 나뭇잎이 가지마다 대열을 갖춘다. 짙은 초록의 잎으로 덧칠해 질때까지 관심 밖 나무로 지내지만 자그마한 초록열매가 주먹보다 커지기 시작하면 눈길이 간다

 주렁주렁 달린 열매덕에 주목 받는 나무가 되는 것이다. 열매의 색이 변하는 건 시간문제. 색이 옅어지면 눈여겨보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드디어 노란 빛깔이 부각되면 열매를 얻기 위한 경쟁이 치열했다. 앞다투어 따가는 사람들 때문에 향을 느낄 틈이 없었다. 운 좋으면 볼 수 있다는 말이 맞았다. 늦가을에 열매를 맺는다니 기억해 둬야지 했고 어쩌다 초록열매를 발견하면 노란 열매가 되기를 고대했다. 하지만 나무에 매달린 모과와 인연이 없었다.


 올 가을에 만난 나무는 큼지막한 모과를 주렁주렁 달고 은은한 향기로 존재감을 과시했다. 햇빛에 비치니 황금색으로까지 보였다. 사진 한 장을 찍고 돌아섰어야 했지만  차마 외면하지 못했다. 모과는 못생긴 것일수록 최상품으로 여긴다. 향기도 진할 뿐 아니라 한약재로 쓰일 때 약효도 좋기 때문이다


 내가 만난 모과가 딱 그랬다. 끈적끈적한 정유 성분이 묻어날 정도였다. 가방 안에 비닐이 없었다면 챙겨올 생각은 못 했으리라. 미끄럽고 단단하지만 향이 일품이었다.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키고 과일전 망신은 모과가 시킨다는 속담이 있다. 울퉁불퉁한 생김새를 두고 놀리듯 하는 말이다. 서운해하는 모과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은 날이다.

호박꽃도 꽃이냐고 비아냥거리는 노래도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고 얘기해주련다. 개의치 말라고 토닥여주고 싶다. 기관지에 좋은 모과차를 마셔보면 그 가치를 다시 보게 된다고. 은은한 모과향에 취해본다면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고 자부심 갖으라고 얘기해 주고 싶다. 모과와 추억을 새롭게 만든 가을. 자연을 즐기는 소소한 행복을 알게 되었다.

작가의 이전글 나뭇잎을 품어준 나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