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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오 김세미 Nov 07. 2023

손을 빌려준 날

엄마 손이 세개일순 없으니까


근길 동네 마트에 들렀다. 맛있는 음식이 먹고싶다는  막내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서다. 항상 양손 가득 물건을 사 가는 습관이 있다. 당장 먹지 않아도, 저렴히 파는 재료를 보면 계획에 없는 장을 보게 된다. 하지만 아픈 어깨를 생각해 꼭 필요한 것만 샀다. 욕심을 내려놓으니 한쪽 손이 자유롭다.


마음이 가뿐해져 시선을 멀리하니 가로수에 가지런히  심어진 은행나무가 보인다. 노오란 잎을 떨구어서  거리가 밝아졌다. 환한 불을 켜놓은 듯했다. 은행잎이 덮인 카페트 같은  길을  조금 더  걷고 싶지만 집으로 가기 위해  방향을 돌린다.


모퉁이를 돌자 꼬마들이 보였다. 보폭을 크게해서 아이들을 보러 갔다. 병아리처럼 귀엽다.  안정적인 걸음을 걷고 있지만 작은 운동화가 모든 걸 말해주었다. 신발 사이즈가 130센치 정도 되니  두 세살 가량의 아이라고.  


노란 운동화를 신은 아이 둘. 남자아이가 약간 크다 쌍둥이인가 싶은데 남매란다. 양 갈래로 묶은 머리가 솔방울을 닮았다. 엄마의 장바구니가 제법 크다. 남자아이는 엄마의 손을 잡았지만 여자아이의 두 손은 자유롭다. 비밀은 모자. 옷에 달린 니트 모자 끝을 잡고 있는 엄마의 손에 힘이 들어갔을 거다.  장바구니를 들고 아이 키 높이를 맞출 순 없으니까.


이럴 땐 엄마 손이 세 개여야 한다.  그걸 모르진 않을 텐데 어쩌다 장까지 보셨을까 잠시 생각한다. 허리춤에 매어있는 아기 띠가 보인다. 막내를 업고 남자아이 손을 잡고 나왔으리라. 필요한 물건을 조금만 사려고 했지만  더 담게 됐을 테고. 예기치 않게 아기 띠에서 해방을 원했던 아이는 걷고 싶다 했겠구나. 그랬겠지. 육아를 하며 겪었던 상황들이다. 아이들과의 일상은 변수의 연속이니까.


놀고 있던 왼손이 오지랖을 부린다. 이럴 땐 손을 빌려줘야 한다고 얼른 손 내밀어 보라 재촉한다. 아이 엄마에게 말을 건넸다. 아기가 세 살쯤 돼 보인다니 두 살이란다. 그럼 연년생이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한다. 고개 숙여 아이와 눈을 맞추었다. 방긋 웃어 보인다. 이때다 싶어 검지손가락을  내밀어 보았다. 꼬마 아가씨는 망설임 없이 손가락을 움켜쥔다. 니트 모자를 잡고 있던 엄마의 손은 해방이다.  


손가락을 움켜쥔 아이는 말이 없지만 살짝 살짝 손가락 주인을 쳐다본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이 자다 깼음을 얘기해 준다. 속도를 맞추기 위해 왼쪽으로 몸을 살짝 기울여 주었다. 고사리 같은 손에서 따뜻한 체온이 전해졌다. 오랫만에 느껴보는 보들보들 아가손. 낙엽의 바스락 거림을 느끼며 우리는 걸었다. 눈동자를 마주치며 잡은 손을 흔들며  재미나게 걸었다. 엄마의 전화벨이 울리기 전까지는.


엄마가 전화받기 위해 걸음을 멈추니 꼬마 아가씨의 걸음도 멈춘다. 언제 친했냐는 듯 뒤도 돌아보지않고 엄마에게 향한다. 손이 부족한 엄마는 남자 아이의 잡은 손을 뺀다. 한 손이 허전해진 나는 이번엔  오빠에게 검지 손가락을 내밀어 본다. 기다렸다는 듯  손을 잡는다. 가로등이 만들어주는 서로의 그림자를 밟으며 걸었다. 산책 나온 강아지에 호기심을 보이고 멍멍 하며 인사를 건넨다. 오빠의 키 역시 왼쪽으로 몸을 기울여야 할 정도로 작다.


아이들이 어릴 때 손을 잡고 걸으면 허리가 아팠다. 차라리 업거나 안으면 더 펀할 정도였다  딱 그맘때다. 남매의 집은 공원을 벗어나 차로를 지나야 하는 길이다. 조금 돌아가더라도 오늘은 손을 빌려주는 날이니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안아줄까 물었더니 내 품에 쏘옥 안기는 아이. 번쩍 안아서 신호등 없는 차도를 건넜다. 부웅 하는 소리를 내며 땅으로 착지까지 완벽하게. 오빠가 깔깔대고 웃었다. 아기 엄마도 딸아이를 번쩍 안고 길을 건넌다. 짐이 많아도 엄마는 힘이 쎄다.


손 흔들며 인사하는  남매와 헤어지고 집에 오는 길. 남매의 보들보들한 손이 그리워졌다. 그새 정이 든 모양이다. 나에게도 그런 손을 매일 어루만지고 뽀뽀해 주던 때가 있었는데 그 시절이 생각나 코끝이 찡해진다.

이제는 내 손보다 더 큰 아이들의 손이지만  '뽀뽀 쪽'을 해주고 싶다. 모처럼 자유로웠던 손 덕분에  아기천사들과 추억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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