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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오 Nov 10. 2023

정성을 담아 준비할 것

챙김의 최전선.  


 아이가 일회용 반창고를 자주 찾았다. 산 지 얼마 안됐는데 또 떨어졌단다. 턱 주변 뾰루지가 이마에도 보였다. 여드름이 벌써 시작되려나, 많이 컸다 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부탁한 새 밴드를 건네며 어디에 붙일건지 물었다. 그런데 자꾸 상처를 숨긴다. 수상하다. 안 보는 척하며 살짝 돌아봤다. 손등에 콩 만한 붉은 반점이 보인다. 깊은 상처다. 재빠르게 손목을 잡는다. 순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알아챘어야 했다. 왜 말을 안 했냐고 아이를 꾸짖다 마음이 먹먹해졌다.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 아토피인 것을 잊었다. 지난 가을엔 샤워기 온수를 얼굴에 직접 노출시켜 아토피가 생겼다. 얼굴 부위라 얼마나 힘들어 했던가. 올봄에는 약한 트러블만 생겨 보습만 신경썼다. 이젠 많이 컸으니 아토피도 괜찮아진 거라며 안심했다.


몇 주 전부터 손가락과 손등에 물집이 생기고 터지기 반복했다는 걸 몰랐다. 수련관 행사 준비로 바빠 주말에도 아침 일찍 댄스 연습을 하러 갔다. 친구와 약속도 많아 아프다면 병원에 가자 할 테니 숨겼으리라.


손톱부터 살폈다. 아토피 아이들은 손톱을 자주 깎아줘야 한다. 청결한 손톱이 상처 부위의 2차 감염을 막을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다. 허나 친구들과 네일스티커도 붙이고 손톱에도 멋을 내고 싶었는지 기르고 있었다. 피아노 칠 때 항상 짧게 유지했으니 얼마나 기르고 싶었겠나 싶어 손톱도 눈감아 줬다. 하지만 이렇게 된 이상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애써 기른 손톱이라 속상해하지만 어쩔 수 없다.


“엄마는 항상 바쁘잖아. 아프다고 했는데 알겠다고 했잖아.” 내 꾸지람에 나름대로 항변하고 잠들었다. 곪은 듯 심해진 상처를 살펴보니. 눈물이 흘렀다. 무신경한 엄마여서 미안했다. 아이들 아토피 때문에 새벽을 하얗게 지세웠던 날이 적지 않다. 지난했던 시간도 떠올랐다. 잊히지 않는 얼룩처럼 남아있는 기억이 고개를 든다.


자는 둥 마는 둥 새벽을 맞이하고 아이를 깨웠다. 피부 전문 병원에 가려는 거다. 피부질환만 진료하는 곳. 동네 피부과는 미용을 목적으로 하는 곳이 많다. 둘째 셋째의 지루성 피부염과 습진성 아토피 때문에 한의원을 많이 다녔고, 한약도 여러 차례 먹였다. 하지만 심할 땐 전문 피부과 치료가 답이다. 약이 독하다고 꺼렸지만 증세가 심각하면 스테로이드를 적절히 조절하며 치료하는 게 가장 빠르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다.


진료시간보다 한 시간 일찍 도착해 첫 번째 환자가 되었다. 의사는 돋보기로 상처부위를 찬찬히 보고 좀더 일찍 오지 그랬냐며 안타까워 한다. 습진성 피부염이란다. 꼭 낫게 해줄 테니 노력해 보자고 아이의 다짐을 받았다. 연세가 지긋한 의사는 장단 맞추듯 손가락에 리듬을 타며 약을 열거한다. 창을 하는 듯 불려지는 약 이름들은 맞은편에 앉은 보조선생의 키보드에 활자화되고 처방전으로 태어난다.


인사하며 나서려는데 음식 조절을 당부한다. 인스턴트와 밀가루, 기름진 음식을 멀리 하라고 재차 강조했다. 치료 기간 중 먹을 수 있는 건, 두부와 계란, 신선한 야채가 많이 들어간 음식이다. 정성이 필요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과자나 젤리 대신 과일을 먹어보자 제안했고 아이도 약속했다. 음식 조절과 노력 덕분에 상처는 눈에 띄게 좋아졌다. 변화의 모습에 신이 나는지 처음 시도하는 알약도 잘 먹었다.


퇴근길에 먹고 싶은 음식을 물었다. 참치김밥이 먹고 싶단다. 먹기는 간단하지만 만드는 수고로움으로 치면 손꼽히는 음식. 간단하게 한 줄 사갈 수도 있지만 마트로 향했다. 신선한 당근을 채 썰고, 시금치를 다듬고, 깻잎도 깨끗이 씻었다. 기본적인 재료에 신선한 야채를 추가하니 맛이 좋다. 풍미있는 속이 꽉 찬 김밥이라는 특급칭찬을 받았다. 분식집 김밥보다 풍성하다고 엄지척을 해준다. 열 줄이 금세 뚝딱이다.


내일은 또 무얼 해줘야 하나. 집밥 모드에 가속도가 붙는다. 잘 먹어주니 장금이가 되자고 생각하게 된다. 자책의 마음으로 뭉쳐있던 실뭉치가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정성이 담긴 음식은 서운했던 딸의 마음 상처도 치료해 줄 것이라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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