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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오 김세미 Nov 12. 2023

예방접종

빠름과 느림


눈이 떠진다. 시간을 확인해 본다. 알람이 울리지도 않았건만 몸은 기억한다. 다시 눈을 감았다. 조금 더 자야 한다고 다독이며 한 시간을 더 잤다. 이제는 더 누워있겠다는 몸의 속삭임을 외면해야만 하는 시간이다


한쪽 다리를 엉덩이 밑으로 접었다 펴고, 반대쪽 다리도 같은 동작을 반복한다. 그 다음은 무릎을 꿇은 상태에서 바닥에 두 팔을 쭉 편다. 간단한 스트레칭이지만  침대와 밤새 속삭였을  몸에 하루를 준비하자는 신호는 꼭 보내려 한다. 직립보행을 위한 준비 태세를 갖춰야 한다는 출정식 같은 거다.  


양치를 하며 보온병에 따끈한 물을 담았다. 캐모마일 티백을 넣어 우린 물을 가방에 넣고 책 한 권을 넣는다. 밀린 숙제를 하러 가는 날이다. 몸을 위한 월동장비라 할수 있을 것이다. 휴일에 문 여는 곳을 검색해 두었다. 토요일까지 힘껏 놀던 아이들이 일요일 아침 예기치 않은 고열을 선물할 때면 자주 찾던 곳이다. 아이들 덕에 휴일 문 여는 병원 리스트는 기본으로 저장돼있다.


감기 기운이 있어 예방접종을 미뤄왔다. 일찍 서둘렀는데 탄천으로 걸어가려니 추웠다. 가던 길을 돌아 택시를 기다렸다. 현장 예약만 가능한 병원이다. 오전 진료밖에 안 하니 사람이 몰릴 테니까. 빠름을 선택하는 게 맞다. 9시 진료지만 8시 20분에 도착. 병원 밖에서 대기해야 하나 싶었는데 여직원이 접수를 받는다. 이미 접수자가 많았다.


가져온 책을 펼쳤다. 따뜻한 차 한잔을 호록록 마시며 버지니아 울프를 만났다. 책 속에 빠져들다 간호사의 음성에 귀를 의심한다. 9시부터 진료인데 오늘 접수 마감이란다. 아직 2분 남았으니 접수해 달라 요청하는 아기 엄마의 애원조의 말투도 들린다. 어쩔 수 없이 2명을 더 받았다. 그 후로도 병원에 도착한 팀의 아쉬운 한숨이 이어졌다. 벌써 90명이 넘었으니 어쩔 수 없단다.


막차 타는 분위기로  접수했던 경험이 있다. 겨우 부탁해서 진료를 받았었다. 아픈 애를 데리고 다른 병원을 또 가지 않아 감사했다. 휴일 병원 이용은 무조건 일찍 도착해야 한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다. 몸의 게으름을 이기길 잘했구나. 토닥거려주고 싶어졌다. 한쪽 팔을 옷 속에서 빼고 주삿바늘을 허용했다. 작은 바늘 하나에도 온몸의 신경이 깜짝 놀란다. 친절한 간호사가 주사약이 들어간 뒤 꾸위 누르며  동그란 뽀로로 반창고를 붙여줬다


탄천으로 걸어오며 물소리를 들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풀을 만져보고 싶었으나 눈으로만 인사했다. 장갑과 모자를 쓰고 아침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소금 빵이 생각난다. 빵 나올 시간이다. 따끈한 빵 먹을 생각에 발걸음이 빨라진다. 입에 한입 베어 물면 바사삭 소리가 나겠지. 나를 위한 선물이다. 주삿바늘의 따끔거림에 놀랐던 세포들은 빵과 커피 한 모금에 행복한 웃음을 짓겠지. 어서 움직여 보자 생각한다.


찬바람에 손끝이 차가워진다. 숙제 같았던 예방 접종을 하고 나니 기분이 좋다.  약기운이 퍼지기 전에 후다닥 청소도 할테다. 그리고 느릿한 오후를 맞이하자 생각한다. 빠름과 느림의 변곡점에서 마실  커피 생각으로  발걸음에 터보엔진이 장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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