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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오 김세미 Nov 14. 2023

물대포의 공격을 받다.

말벌집 소탕작전

비를 머금은 우중충한 날씨. 가을비를 기다리게 된다. 이런 날은 커피가 어울린다. 커피 한 모금을 하려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다급한 아이의 목소리가 들린다. " 네 일단 가볼게요 ". 기전 반장이 뛰어갔다. 나뭇가지에 말벌집이 있다는 전화였다. 아이가 얘기한 곳은 cctv로도 보이는 위치다. 옥상 화면으로 보기에는 둥지처럼 보였다.


기전 반장이 보낸 사진을 살펴본다. 잎이 떨어진 나뭇가지에 동그라미 하나가 생겼다. 이미지로 접할 땐 정감 있는 풍경이다. 하지만 확대해 보니 대롱거리듯 달려있는 동그란 장식물. 둥지와는 확연히 다르다. 말벌집이다.


말벌의 선택을 받은 나무는 가지에서 수많은 잎들을 떨구었다. 잎사귀들이 나뭇가지를 덮고 있을 땐 말벌집이 보이지 않았다. 완벽하게 숨을 수 있었다. 하나 사람들의 눈에 띄게 된 이상. 그대로 내버려 둘순 없다.

 

우리가 처리할 수 있는 민원이 아니다. 이럴 땐 민원인이 되어야 한다. 소방서로 전화를 했다. 아파트 나무에 커다란 말벌집이 있다고. 곧 출동하겠다며 경비실에 안내를 부탁한다. 초소에 소방차가 올 거라고 말벌집이 있는 나무 위치를 전해드렸다. 소방차가 출동할 때 경비 아저씨들의 역할은 중요하다. 촌각을 다투는 사안일 땐 더욱 그렇다. 입구 차단기를 지날때 길잡이 역할을 해야 하니까


전화를 끊고 달력을 보니 소방의 날이라 적혀 있었다. 오늘이 그날. 올해는 단지안에 소방차가 여러 번 출동했었다. 냄비를 올려둔 채 잠이 들어 신고를 했었고 오래된 김치냉장고의 합선으로 베란다에 펑소리가 나서 출동하기도 했다. 그래도 심각한 사안은 없었다. 대부분 화재발생 우려 때문이다. 야생동물의 출연이나 말벌집 제거 건도 여러 번이다.


얼마 후 단지에 소방차가 들어왔다. 어린이집 하교시간과 맞물렸다. 가뜩이나 꼬마들에겐 인기많은 소방차인데. 소방관 아저씨를 보겠다는 아이들도 하나둘 자리에 모인다. 통제가 필요했다. 높이가 있는 나무라 물대포를 써야 한다니 더더욱 분주했다.


소방호스를 길게 늘어뜨렸다. 나무에 제대로 물줄기를 보낼 수 있도록 각도를 조정하려는 거다. 물대포의 공격을 받을 말벌집이 조금 걱정되었다. 우려를 응원삼았는지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다. 호락호락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보이는 듯 했다. 하지만 호스를 몇 번 흔들어 대니 더이상 견디기 힘들었나보다. 삼분의 일 정도가 떨어져 나간다


각도를 조정하여 물대포는 2차공격을 감행한다. 연달아 받은 공격에 힘이 빠졌지만 이번에도 삼분의 일만을 떨어뜨린다. 물줄기의 엄청난 힘에도 가지 끝에 붙어 있다. 소방관도 물대포 조준이 힘들다며 난색을 표한다. 퇴근시간과 겹쳐 사람들이 많아지고 차량통제도 필요한 부분이 있으니 일단락 짓는 것이 필요했다. 나머지는 가지를 잘라서 해결했음 좋겠다는 소방관의 제안에 고지 가위를 들고 마무리 작업을 해야 했다.


소방호스를 정리하며 유유히 빠져나가는 소방차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눈이 빛났다. 소방의 날 만나게 된 소방차에 감사의 마음을 보내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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