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지 흰머리가 시간의 흐름을 추이해 보는 기준이 됩니다. 귀밑 머리에 하얀 새치를 거울로 알아챌 때는, 정수리 부근의 흰머리가 파뿌리처럼 진행중.
그래도 사람들이 머리 좀 해야겠네라고 귀띔해 줄 때까지 버티다, 마지못해 마음을 정하지요. 참으로 귀찮은 염색.
오늘은 미뤘던 숙제를 하러 가는 날. 코로나가 기승일때는 집에서 염색을 몇번 하기도 했으나, 꼼꼼히 되지 않아 횟수가 더 늘어났습니다. 머리가 상하는 단점도 있고 여러이유 때문에 전문가의 손을 빌리기로 합니다.
미용실보다는 염색방을 애용. 착한가격 이라는 경제적 측면도 크지만, 무엇보다 원장님의 편안한 성격이 결정적 이유입니다. 처음 염색을 하러 갔을 때 아무 생각 없이 머리를 급히 감고 갔습니다.
머리도 다 안 말렸네,
애기 엄마 염색할 때는 머리 감고 오지 마.
머리 감은지 하루나 이틀 됐을때 해야 돼.
젊은 엄마들은 냄새난다고 머리 감고 오더라,
그러면 머리 상해서 안돼.
내일 다시 와두 되는데 어떻게 할까?
그날 이후 단골이 됐지요. 인간미 넘치는 분이라 몇 년째 그 인연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오늘은 집안 행사 때문에 언니가 와 계시네요. 원장님은 언니한테 미용기술을 배웠고 이제는 나이 들어 염색방만 운영 중이거든요.
머리색을 확인하고 살에 염색물이 들지 않게 크림을 꼼꼼하게 바릅니다. 크림이 스미면. 이제 본격적으로 약재가 발라진 이마와 머리 경계 부분을 시작으로 오른쪽 왼쪽 번갈아 촘촘히 덧칠해가지요
귀밑머리 쪽도 꼼꼼히. 꼬리빗으로 넘겨가며 색을 입혀갑니다. 한참을 바르고 나면 이제 기다림의 시간. 사실 지금부터가 본 게임입니다.
입담 좋은 원장님과 손님들의 '그때는 그랬지' 스토리가 이어지니까요.
오늘은 언제부터 미용 일을 했냐는 질문에 자연스럽게 옛날 이야기가 오갑니다. 이야기 듣는 걸 좋아하기에 귀를 쫑긋 세워보지요.
원 장 : 시골 촌구석에서 내 청춘을 보내고 싶지가 않더라고. 고등학교 졸업하고 시집이나 가라고 하는 걸 미용기술 안배우면 나는 못 산다고 울고불고 고집을 부렸지. 미용학원을 3개월 다니고 서울로 상경했어
궁금女: 그럼 혼자 올라오셨어요?
원 장: 마침 이모가 서울에 살아서 겨우 허락받았지. 3년을 보조미용사로 악착같이 일했어. 23살에 원장이 되겠다는 목표를 세웠으니까. 한번 정한 일은 하늘이 두쪽나더라도 해내거든..
궁금女: 그럼, 가게는 23살에 진짜로 차리셨어요?
원 장: 당연하지. 하기로 한 거 잖아. 모아놓은 돈으로 부족해서 엄마와 이모한테 자금을 조금 빌렸지. 화장실 갈 시간도 줄여가며 일을 했어. 한 번 온 사람은 무조건 내 손님을 만들려고 최선을 다했지. 입소문이 나서 사람이 줄을 섰어. 3개월만에 그 돈을 다 갚았다니까. 내가 맏인데 집안을 일으켜야 한다는 마음이었어
한 분야에서 30년을 해오신 고수. 책임감 강한 맏이의 자수성가 스토리를 듣고 나니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한번 정한 일은 무조건 해내는 성격이라고 자신있게 얘기하는 모습에 뜨거운 열정이 느껴졌습니다.
자신에 대한 믿음이 정말 강하신 분. 자긍심도 훈련이 필요한 것일 텐데
긴 세월동안 자신에 대한 신뢰감이 축적되어 있는 사람만이 할수 있는 이야기였습니다.
염색하고 나니, 훨씬 젊어뵈네
귀찮아도 염색해야돼.
옷차림도 전략이라잖아,
머리도 그런거야
염색을 하지 않으면 지저분해 보이고 더 나이 들어 보인다니 선택지가 없습니다. 귀찮은 행사지만 어려 보인다는 칭찬에 또 으쓱.
꼼꼼한 발림으로 감춰진 흰머리는 다음 달엔 또 파뿌리처럼 나오겠지요
그때는 어떤 이야기가 펼쳐지려나 기대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