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소꿉놀이

그리움의 다식

by 미오

산책하기 좋은 날. 직진 코스로 접어들었던 발걸음을 왼쪽으로 돌립니다. 최단코스로 마트를 갈때는 공원을 가로지르고.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는 한 바퀴를 크게 돌지요. 공원의 꽃나무들을 다 챙겨볼 수 있으니 푸르게 물오른 그들에게 마음껏 인사해 주러는 겁니다.


반바퀴를 돌았을 즈음. 무언가를 따고 계시는 할머니들이 포착되네요. 매실을 딸 시기는 아닌데 가만 보니 키가 크지 않은 소나무 앞입니다.


생경한 분위기를 놓칠리 없는 나의 호기심은 주저함이 없습니다. 할머니가 따는 그 열매를 같이 거들어봅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시는 시선에


이거 여기다 넣으면 되죠? 저 안에 있는 거 좀 따드릴까요?


성큼 안쪽으로 들어가서 제법 튼실해 보이는 것들을 통에 담아드려봅니다. 유모차에 의지해 한 걸음씩 내딛고 계시는 할머니가 반색을 하며 좋아하시네요. 그 모습을 보고 이때다 싶어서 질문을 던져봅니다

송화꽃


이게 송홧가루거든 이걸로 다식 만들려고 하는 거야 ..
저 아줌니가 말려서 가루내고 다식 만드는 거 해보고 싶다는데 내가 도와줘야지


한참을 따다 보니 손에 진득한 것도 묻어납니다. 이제 그만 딸까 싶었는데 마침 전화벨이 울리네요.

인사를 하면서 마트로 향하며 안부를 묻던 지인에게 조금 전의 상황을 얘기해 봅니다


할머니가 노란 송홧가루에 꿀이나 조청 넣고 다식판에 꼭꼭 눌러 모양을 내서 만들어줬지
그걸 모른단 말이야? 맛이 어떠냐고? 엄~청 맛있지는 않던데.
조청이나 꿀을 얼마나 넣느냐에 따라 다른거 같애 나는 프로폴리스 먹는 느낌이더라.


노랗게 묻어 나오던 애물단지 송홧가루도 이런 쓸모가 있는 줄 몰랐습니다. 소나무의 솔방울 정도에만 관심을 가졌었나봐요 그런데 노랗게 가루 날리는 주범인 송화를 이렇게 모으는 거구나 알게 됐습니다


아는 만큼 보이는 건데 그동안 관심이 없었으니 알리가 없지요. 다식 만드시는 어르신이 많아지면 봄마다 송홧가루로 인한 피해로부터 해방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 할머니가 장바구니를 힐끗 보시더니 파 한 단에 얼마였는지를 물으십니다. 자연스레 얼마나 따셨는지를 여쭐수있었지요. 대답 대신 유모차에 딸린 보관함을 열어 보이시네요. 아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가득 담겨있습니다.


다식 만들면 얼마 안 된다고 내일 조금 더 따신다고 하십니다. 소꿉놀이라서 안힘들다고,



그렇구나 소꿉놀이. 할머니의 그리움 속엔 다식이 있었던 겁니다

보행기에 의지해 한걸음 한걸음 조심스럽게 걸어가시는 모습 뒤로 다식 전수 희망자인 다소 젊은 할머니의 모습도 보이네요.


어르신들의 추억 속 그리움으로 빚어지는 다식이 어떤 맛일까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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