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그렇게 병아리가 된다.

서로의 줄탁동시

by 미오


삐약 삐약. 거실 한켠에서 노래소리가 들립니다. 엄마의 사랑속에 자라는 병아리들 합창 소리지요.


전원 생활이 건강에 도움 될거라는 남동생의 권유로 텃밭을 가꿀 수 있는 곳으로 이사온지도 이제 5년남짓


처음에는 닭 두세 마리로 시작했는데 어느덧 이십여 마리 이상의 닭들이 넓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얼마전부터는 인큐베이터라 불리는 부화기도 들였습니다. 큰 기대를 안했는데 부화기에서 태어나는 병아리도 늘어가네요.


뭐든 시작하면 끝을 보는 성격이시라 매일 아프다 하시면서도 닭들 돌보기는 지극정성. 쉬시라해도 적적한 시간 달래기에는 이만한 것이 없다고 아이챙기듯 살피십니다


어미 닭이 알을 품어 부화시키는 기간은 21일. 부화기안에서도 21~25일정도면 신호를 보낸다고 합니다 . 습도를 적절히 유지해주고 살펴야 하는 숙제는 덤이구요.


알을 하나둘 낳기 시작하면 그때 그때 투입 되기 때문에 부화기에 넣어지는 알의 날짜도 제각각.




부화기 뚜껑을 열어봅니다. 구멍난 계란이 몇개 보이네요. 껍질에 구명이 뽕뽕 뚫린건 안에서 쪼아댄거라고 곧 나오겠다는 신호래요. 구멍속을 자세히 보니 뭔가 꿈틀거립니다.


부화기의 미세한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하니 병아리가 태어날까봐 외출도 꺼려지신데요. 식사하러 가자 하니 조금만 기다리라고 합니다. 오늘 태어나는 아이들 챙겨야 한다고.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요. 엄마가 준비를 하십니다. 뚜껑을 열어보니 진짜 태어났네요. 힘겹게 알을 깨고 나온 병아리의 미세한 삐약 거림을 금새 알아채셨습니다. 기민한 움직임인데 어찌 그리 잘아시는지.


갓 태어난 병아리



갓 태어난 병아리는 친구들 틈바구니로 합류. 따로 놔둬야 하지 않느냐고 몇번을 물어도 그냥 같이 둬야 서로의 온기 품고 살아난다고 거듭 말씀 하십니다. 못내 안타까운 마음에 시선을 고정시켜 봅니다.


여리 여리 약할거라는 건 어디까지나 나의 주관적 관점이었어요. 병아리는 결코 약하지 않았습니다. 꼬물거라다가 엎치락 뒷치락 얼마간의 힘겨운 걸음 끝에 자기 자리를 찾네요. 예사롭지 않은 꼬물거림. 눈에 밟혀 한참을 주시하지만 보란 듯이 자리매김 하는 모습이 어찌나 신통하던지요.


보송보송 털이 난 선배들 틈바구니에 끼어보고 내쳐지기도 하지만 안으로 안으로 파고 듭니다. 마침내 포근한 안식처 한켠을 기꺼이 차지하네요.



병아리들은 어서 날개를 펼 꿈을 꾸는거 같았어요 엄마의 닭장에는 닭들이 날기도 하거든요. 좁은 케이지가 아니라서 마음껏 활보할 수 있습니다. 덕분에 우리는 닭이 낳은 유기농 계란을 마음껏 즐길 수 있지요.


요즘엔 엄마가 부화한 병아리들을 구매 하고자 하는 분들도 생겼데요. 소문이 나서 알음알음 사러오신다고

친환경 달걀도 가끔 부탁해서 가져가시는 분이 있는데 이번엔 한판이 25개짜리였다고 30개를 다 못채워 주셨다고 아쉬워 하셨습니다.


줄탁동시 (啐啄同時) :
병아리가 알에서 깨어나기 위해서는 어미 닭이 밖에서 쪼고,
병아리가 안에서 쪼며 서로 도와야 일이 순조롭게 완성됨을 의미함.


줄탁동시 (啐啄同時) 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어미 닭은 병아리가 톡톡할 때 밖에서 문을 열어주는 역할만 한다지요. 세상에 나온 병아리는 스스로 삶을 개척해야 하니까요.


6남매를 다 키운 헛헛한 자리에 마음의 병이 찾아들어 힘겨워 하셨습니다 . 엄마에게도 스스로 깨기 힘겨웠던 껍질이 깨지고 있는 듯 했어요.


병아리도 엄마도 서로에게 줄탁동시의 역할을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 역시도 벽이라 생각하는 그 알에서 깨어나기 위해, 껍질을 또 한번 톡톡 쪼아야 겠다는 다짐을 하게됩니다


그렇게 병아리가 되보자고 스스로를 다독입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별 안녕 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