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 신호를 기다리는 선수들처럼 앞다투어 전화가 옵니다.
A: 병원 가야 되는데 9시 10분까지는 와주세요
B: 출근해야 되니 30분까지는 무조건 해주세요
C: 3시가 좀 넘을 수도 있는데 어떻게 안될까요
9시 30분부터 시작한다고 분명히 방송을 했는데 특별히 먼저 와달라는 전화. 원하는 시간에 동시 방문 요청이 유독 많은 오늘은 아파트의 실내소독일.
가가호호 방문이 이루어지는 날. 한 사람이 2~3개동을 다 방문해야 하기에 소독원의 애로사항과 고충이 많습니다. 반려견 관련 민원은 소독원을 힘들게합니다. 방문 직원을 고려하지 않는 견주들의 태도 때문이지요.
강아지를 잡지도 않더라구요 . 옷을 얇게 입었으면 상처가 났을 거예요. 벨 누를 때 개 짖는 소리만 들려도 가슴이 두근두근해지니 일을 할 수가 없어요.
(소독원이 토로하는 민원)
오늘도 무신경한 견주 때문에 급기야 다리를 물릴 뻔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순한 애가 왜 그랬지로 얼버무리면 안 되는 사안인데, 강아지 놀란 것만 중하게 생각하는 견주의 태도에 너무 볼쾌하다고 관리실로 전화를 하셨네요.
반려견 있는 세대의 협조를 구한다는 방송을 한 번 더 해드리며 마음을 달래드렸습니다.
우리 개는 안 물어요! 사람을 좋아해서 그래요
(일부 견주들의 착각성 멘트)
강아지가 무슨 죄가 있겠어요. 반갑다고 꼬리 치며 달려드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되지요. 하지만 낯선 이의 방문을 경계하는 강아지도 있는데 일부 견주들 때문에 마음이 상하신거 같아 안타까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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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독이 끝나갈 무렵, 또 한 차례 전화가 옵니다
초인종이 울려서 금방 나갔는데 없더라고요
너무 형식적으로 누르고 가시는 거 같아요
계속 기다렸는데 왜 안 오죠? 마지막 집이라도 오라고 해주세요
시계는 3시를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제 시계로는 지금 58분인데요. 이제까지 기다린 사람한테 그 정도는 해줘야죠"
소독원에게 추가 세대 민원을 전달합니다. 이미 3시가 지났다고 다음 추가 소독때 하자고 합니다. 겨우 양해를 구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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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입주민 전화. 소독원 태도가 너무 불손했데요. 고맙다고 했더니 대꾸도 안 하더라고 업체 바꿔야 하는 거 아니냐고 소독원한테 갑질당한 기분이라고 언짢아하시네요. 너그럽게 봐주시라고 달래드립니다.
상황 파악을 위해 소독원에게 전화드려봅니다. 이번엔 입주민이 갑질하는 태도에 기분이 나빴다고 토로하십니다. 소독비 내는데 조금 늦게 라도 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당연한 듯 얘기하셨다구요
입장 다른 '갑질 핑퐁 게임'. 심판이 된 듯한 날이 었습니다.
네트 위에 탁구공이 왔다 갔다 반복 했지만, 어느 쪽에도 손을 들어드릴 수가 없었네요
갑도 을이 되고 을도 갑이 되는 세상인데 헛웃음만 나옵니다. 돌고 도는 핑퐁게임에 더 이상의 에너지소모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래봅니다.
탁구공이 된 마음을 만지작거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