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누수도 잡은 날

by 미오


공사가 커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비교적 단편적인 생각이 머물 수 있는 책 한 권을 펼칩니다.


주말 아침 무료하게 흘려보내야 하는 시간들이 아까워 시간의 누수를 잡을 요량으로 읽어내려간 시집. 적당한 간격으로 울리는 기계음 소리가 그마저도 용납해주지 않습니다.


누수탐지 전문 업체에서 아침 일찍 온다 했기에 가족들도 외출을 하게 했지요. 물도 못쓰는 상황이니 집안일도 일단 멈춤 상태입니다


photo-1517646287270-a5a9ca602e5c.jpg?type=w1 © zhenhappy, 출처 Unsplash


계량기를 잠그고 수도배관 쪽에 호수를 연결. 물을 빼고 에어컴프레서에 공기를 주입합니다.

호기심이 발동하네요. 질문을 하고 싶은데 작업에 방해가 될지 모르니 일단 커피 한 잔을 권유하며 서로간의 긴장을 풉니다.


주입된 공기로 압을 측정한다고. 압이 떨어지면 물이 새는 거라고 귀띔해 주시네요. 검사 결과 직수배관의 문제임을 얘기해 주셨습니다. 냉수 쪽인 것 같은데. 좀 더 신중히 검사해 보고 얘기해준다고 합니다.문제의 배관을 찾아봐야 하는데 드릴소음이 나는 공사가 될수 있다고 걱정해 주십니다


큰 공사 없이 끝낼 수 있도록 꼼꼼히 찾아보겠다 했어요. 두 개의 화장실을 분주히 돌아보고 개수대며 보일러 배관도 점검합니다. 샤워기 수전이 연결된 곳에 틈이 있었다고 합니다. 작은 틈이 부른 누수였어요. 그 결과 우리 아랫집도 아닌 옆집에 피해가 생겼던거죠. 작은 틈을 메우면서 일단락 됐습니다.




그렇게 끝나는 줄 알았죠. 그런데 멀쩡하던 온도 조절기 전원이 꺼졌습니다. 보일러 물을 빼고 검사를 위해 온도를 올렸는데 화면이 먹통이네요


당황하신 기사님 여기 저기 전화를 해봅니다. 저 역시 설비직원에게 연락해보고 구조를 묻기위해 관리직원과도 통화를 시도합니다. 리셋을 위한 콘센트 찾기에 이번엔 심혈을 기울입니다. 콘센트가 싱크대 뒤쪽이라 어찌할 바를 모르고 애를 써보더니 안되겠는지 일정이 있어 다음에 보일러 관련 기사를 부르라며 비용 발생은 추후에 얘기하자 합니다.


퇴장을 하는 기사의 뒷모습이 안쓰럽습니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격으로 책임을 전가하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SE-5dcb8e9f-f702-11ed-aeb1-2dd04b9c4510.jpg?type=w1 기사님의 당황스러운 표정이 이입된 소품 사진


누수는 기술적 장비를 이용해 잡았지만. 누수 업체 직원은 마음의 누수를 잡지 못하고 갔으니까요. 그 마음의 누수를 해결하고 싶었지요. 교체한지 일 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정전도 아니고. 압력 문제 때문에 기계 전원이 꺼진다는 건 문제가 있습니다.


단순하게 생각을 정리하려다보니 문득 스치는 내용이 있습니다.


시간의 누수를 잡고자 뒤적이던 김사인의 <시를 어루만지다>라는 책이었어요. 시를 읽는 마음 가짐에 대해 쓰여진 부분에 표시를 해두었었죠


사랑이 투입되지 않으면 시는 읽힐 수 없다.
마치 전기를 투입하지 않으면 음반을 들을 수 없는 것처럼

김사인<시를 어루만지다>


이 구절이 떠오르니 전기 공급에 문제가 생겼을 때 전원이 끊어질 수 있다는 생각이 스칩니다. 혹시 차단기가 내려갔다면 충분히 가능하겠다 싶었지요. 두근두근 두꺼비집을 살펴봅니다. 감사하게도 차단기가 내려갔네요.


차단기를 올리니 전원이 들어옵니다. 정상작동!

때마침 기사님이 죄송하다며 주차장 출발 전 전화를 주십니다. 그래서 차단기 상황을 말씀드렸지요. 목소리에 생기가 돕니다. 안도하는 목소리에 제 마음도 편안해집니다. 다음엔 차단기 쪽도 한번 염두에 두겠다고 감사 인사를 전하시더군요.




가끔은 가장 기본적인 것을 놓치게 됩니다. 그리고 전혀 예기치 않았던 곳에서 답을 찾게 되지요.

우연히 책 한권에서 힌트를 얻었던 오늘처럼요. 마음의 누수까지 잡을 수 있어서 기분 좋은 날이었습니다.


누수는 틈을 찾는 것. 누수가 되지 않도록 마음을 써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상의 누수로 변수가 생기지 않아야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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