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나무의 속삭임

상처에 의연한 삶

by 미오


" 자작나무 보러 갈 건데 같이 갈래?" 그녀의 긴급 제안에 오케이 사인을 보냈습니다.


지난 겨울 눈 내린 주변 경관과 잘 어울리는 나무라 넋을 놓고 보았습니다. 자작나무 숲에 가본적 있냐는 물음에 한 번도 안 가봤다 하니 봄마다 간다고 올해는 같이가기로 약속했지요


그런데 비 예보가 있네요. 당연히 취소할 줄 알았는데 강행 한답니다. 비가 오면 운치가 있어 더운 날씨보다 좋다는 말씀에 이른 아침 출발.

인제 자작나무 숲 조형물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한데 사람들의 얼굴에는 설렘이 가득합니다. 자작나무 군락지를 보러 왔기 때문에 비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우산과 비옷을 챙겨가시는군요.


숲을 가는 길은 다양한 코스가 있습니다. 두 번의 갈림길에서 우리는 새로 조성된 길을 택했지요. 가장 오래 걸리고 경사도가 있지만 자작나무를 좀더 많이 볼 수 있는 곳이니 주저 없이 전진.


갈림길마다 산림청 직원들이 있었습니다. 자생하는 진귀한 식물에 대한 설명도 해주십니다. 산목련의 청초한 자태, 독초인 천남성의 고운 잎사귀, 우산나물의 특이한 모습도 귀동냥으로 들으며 올라가니 저 멀리 군락지가 보입니다.


3코스는 힘든 대신 더 많이 볼 수 있다 했는데 선택의 갈림길에서 이 곳을 점찍었던 그녀에게 엄지척을 해주었습니다.


강원도 인제 자작나무 숲


가파른 경사로를 오르자 흰색의 기둥사이로 연초록의 잎들이 하늘을 찌르는 첨탑처럼 시야를 가득 메웁니다.

원근감 있게 심어진 나무들. 병풍처럼 펼쳐진 자작나무의 압도적 스케일에 황홀해졌습니다.


산림청 직원분이 훼손된 자작나무에 대해 얘기를 해주시네요. 수피를 벗기기도 하고 낙서를 하는 등산객 때문에 움푹 팬 상처들이 많다고 합니다 멀리서 보이는 거뭇거뭇한 무늬들이 상처였어요


움푹 팬 상처들을 대나무의 마디처럼 드러낸 채 하늘로 치솟은 나무들에 시선을 고정해 봅니다.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니 스치우듯 나뭇잎이 움직입니다. 이파리의 떨림이 숨죽여 들어보면 노래처럼 들립니다. 조금 더 바람이 가해지니 자작나무의 속삭임이 나직히 들립니다.


움푹패인 상처가 있는 자작나무



상처 없는 인생이 있을까?
좋은 날은 좋은 대로,
슬픈 날은 슬픈 대로
흔들리지 말고, 주저하지 말고
마음속 생채기 보듬어
쭉쭉 하늘 향해 올라가야지.

- 자작나무의 속삭임(미오)


가시 돋힌 말이 마음에 생채기를 내어 힘겨웠던 그날들을 떠올리게 됩니다. 자작나무를 보니 마음에 패인 상처들도 들여다 보게 되었지요.


말이 주는 상처에 연연하지 말고 자작나무처럼 의연하게 시선을 하늘로 향해 보자고 다독입니다

자작나무의 속삭임에 빠져있는데 그녀가 손짓을 합니다. 두팔을 하늘 향해 펼쳐 멋진 포즈를 취하시네요.


자작나무 숲에서 추억의 마디를 새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