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정류장에서 내리면 육교를 건너야합니다. 육교를 건너 계단을 내려가다 보면 밭에서 일하는 노부부가 보이지요. 비가 세차게 내리는 날을 제외하고 거의 매일 뵐 수 있는 분들입니다. 폭염주의보 내린 날도 우뚝 솟은 나무처럼 그 자리를 지키셨지요. 농작물을 자식이라도 되듯 챙기시는 분들.
가끔은 큰소리가 납니다. 성격 급한 할머니의 주문에 느릿한 움직임으로 대응하시니 재촉하는 언성은 높아집니다. 할아버지의 반응은 시큰둥. 원래 그러니 색다를 거 없다는 듯 초연한 모습이지요. 가끔 인사를 나누는 분인데 오늘은 작은 호박 하나를 내미십니다. 집에 가서 된장찌개를 해먹으라 하시네요. 생각지도 않은 선물을 받았습니다.
이곳을 지날 때마다 노란 꽃을 보던 모습을 기억하셨나 봅니다. 멀리서 보면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하는 별을 닮았거든요. 가까이서 보면 불가사리처럼 보이기도 하고 나팔 같기도 합니다.
별을 닮은 호박꽃
아무 곳이나 심어놓으면 잘 자라는 호박은 엄마네 담장을 덮고 있는 꽃이기도 합니다. 자세히 볼까 싶었지만 강아지들이 있는 곳과 가까워서 사실 호박이 익을 때 까지는 멀찍이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꽃이 피었구나 정도로 무신경하게 보아 왔었지요. 그런데 노부부가 심어둔 호박을 보게 된 후 좋아하게 됐습니다.
화려하게 피어 이목을 집중시키는 꽃들의 명성과는 거리가 먼 꽃입니다.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이 되냐 타박당하고. 호박 꽂도 꽃이냐는 비아냥을 무시하지요.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반전매력이 존재하거든요. 소탈하지만 넉넉한 인정이 넘치는 꽃입니다. 벌과 나비를 불러들여 꽃 속에 있는 꿀들을 아낌없이 주니까요.
호박 꽃도 꽃이냐는 노랫가사에 초연합니다. 그저 묵묵히 자기를 찾는 손님들에게 넉넉한 인심을 베풀 뿐. 활짝 핀 꽃의 꿀 단지를 나눠준 대가로 벌과 나비들의 도움을 받습니다. 그들의 도움으로 꽃가루받이를 하고 나면 더 이상 욕심내지 않고 조용한 퇴장을 하는 꽃. 떠나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정확히 아는 지혜를 갖고 있지요.
볼품없이 낮은 위치에서 피지만 나름의 향기를 가진 꽃. 제가 갖고 있는 꿀단지를 후한 인심으로 나누는 꽃이기에 외로울 틈이 없습니다.
호박을 선물받은 아침. 익고나면 속과 겉이 같은색깔인 호박처럼 나이들어가자고 생각해봅니다. 평판따위에 초연해지자고 다독여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