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들의 명퇴

by 미오

엄마, 엄지발가락이 아파요" 얼마 전 놀러 갈 때도 그 얘길 했었는데 잊고 있었다. 많이 걸어서 그런가 보다 했다. 운동화를 살펴보니 런닝화의 엄지발가락 부분만 톡 튀어나왔다. 발이 조금 컸을까 싶어. 아껴둔 운동화 한 켤레를 꺼낸다


고모가 치수를 잘못 보고 샀다고 두해 전 보내줬던 신발이다. 방학 전에 신겨봤을 때 헐떡 거렸던 230mm 운동화. 이제야 신을 수있겠구나 생각하던 찰나.


"엄마 작아요!

"작다구? 그럴리가. 다시 신어봐 "

엄지발가락이 신발 앞쪽에 바틋하게 공간을 메운다.



2년째 빛을 못보고 보관대에 있던 신발. 우리집에선 주인을 찾을 운명이 아니었나보다. 신데렐라 구두 찾기도 아니고. 무용지물이란 불명예가 남았다. 신발의 사명을 다하지 못했어도 이제는 갇힘에서 해방이다. 신발입장에서는 냄새나는 신발장 갑갑한 상자속에 갇힌 채 보낸 세월이 야속하겠지만. 어쩔수 없다.명퇴다.



약속시간이 다 됐다고 보채되는 아이에게 엄마의 운동화를 신겨보았다. 발이 편하고 좋단다. 급한데로 엄마 신발을 신고 외출을 나서는 딸. 본인 발사이즈가 엄마와 같아졌다고 신기해 한다


© krsp, 출처 Unsplash


신발장을 열어본다. 빽빽한 밀도를 자랑하고 있다. 내친김에 정리를 해봐야지. 가족의 발 사이즈에 적합하지 않은 신발들을 퇴출시킬 요량이다. 아이들의 성장 속도가 퇴장 속도를 못이겼다. 추위 더위로부터 발을 보호해 주고 폭신한 착용감을 선물해 줬던 신발들.



추억들이 떠올라 버리지 못한 것들을 또 한켠으로 분류해본다. 뻥뻥 차올리던 축구공에 시달렸음에도 축구화는 아직 현역일 수 있다고 눈짓을 해보인다. 산을 누비던 등산화 역시 퇴출되기엔 이르다는 눈빛을 발사한다. 허나 가차없는 퇴출대상이다. 바닷가에서 계곡에서 발을 감싸줬던 샌들역시 예외는 없다.



다양한 사이즈의 신발들이 공존했던 신발장. 이제는 여성용 240mm와 남성용 270mm로 이원화 되었다. 두 치수가 우리 다섯식구 신발사이즈로 압축되었다. 깔끔히 정리되니 빠져나간 자리가 휑하다.



발사이즈가 3달만에 바뀐 딸. 손가락길이가 갑자기 커졌던 큰 아들, 매해 방학을 기점으로 운동화 사이즈를 늘려갔던 작은 아들. 두번의 경험이 있음에도 딸아이의 성장은 신기하기만 하다. 콩나물처럼 키도 쑥쑥 자랄터인데 마음의 준비를 해야한다 .



수십만 보를 함께 걸었을 신발들을 보내는 날. 아이의 커진 발 만큼이나 세월이 빨라지고 있다는 생각에 씁쓸해졌다. 손바닥에 놓으면 꼭 감싸 지던 아이의 발바닥이 그리워지는 날이다. 아기들의 탄생을 기다리며 신발을 준비했던 그날의 설렘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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