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사에 홍범도 장군 흉상을 없애고 만주 간도특설대 출신 백선엽 흉상을 세운다고?
왜 일본은 우리를 무시하는가?
우리나라 5천 년 역사에서 가장 치욕적인 사건은 무엇일까? 일본과의 싸움인 임진왜란이라고도 하고, 청나라에 굴복한 병자호란이라고도 하겠지만 압도적인 대답은 역시 일본에게 36년간 나라를 빼앗긴 것이라고 여길 것이다.
5천 년 역사를 이어가다보면 이런저런 일이 있기 마련이다. 임진왜란처럼 방심하여 왕이 나라 끝 의주까지 도망간 때도 있고, 병자호란처럼 명분만 따지며 남한산성에서 덜덜 떨다가 삼전도에서 항복하여 머리를 조아릴 때도 있고 어떤 때는 나라도 잃을 때가 있다. 방심하다가, 명분만 좇다가, 대세에 어두워 나라도 빼앗기기도 하는 우여곡절을 겪고 그렇게 역사는
지나왔다. 한편 생각해보면 한번도 시련을 겪지 않고 나라도 빼앗기지 않고 어떻게 5천 년을 이어올 수 있었겠는가?
역사는 공짜가 없다. 시련을 주면 반대로 기회도 준다. 임진왜란을 겪었지만 임진왜란을 겪은 광해군은 중립외교를 통해 국제정세에 능동적으로 대처했다. 명나라에 대한 사대를 멀리하고 유교적 명분을 잃은 광해군은 인조에 의해 쫓겨났다. 그러나 반정에 성공한 인조는 사대 명분만 좇다가 청나라의 침략을 받고 삼전도에서 머리를 아홉 번 박는 수모를 당했다.
하지만 그러한 수모도 공짜는 아니었다. 항복의 조건으로 소현세자가 청나라로 끌려갔지만 그곳에서 소현세자는 서구의 학문과 청나라 문물을 접하게 되었다. 청에게 항복하지 않았다면 얻을 수 없었던 신문물에 대한 정보를 소현세자를 통해서 얻게 되었다. 그러나 소현세자는 귀국하자마자 석연치 않은 죽음을 당하게 된다. 명분론에 입각한 인조와 신하들이 소현세자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던 차에 일어난 죽음이라 여러 가지 억측을 낳기도 하였다. 청에게 항복한 것이 아쉬운 게 아니라 소현세자가 다음 왕위를 이어가지 못한 게 더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긴 건 치욕이긴 하지만 난 그렇게 치욕스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잃어버린 나라를 찾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던 수많은 사람을 생각하면 비온 뒤 땅이 굳는다는 심정으로 희망을 가질 수 있다.
그런데 경술국치보다 더 치욕스러운 것은 해방 이후 우리가 보여준 태도다. 5천 년 역사를 가진 민족으로서 나라를 빼앗기고 다시 찾았으면 당연히 친일을 정리하여 과거에 대해 반성하고 역사의 정기를 바로 세워야 하는데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1910년 8월 29일이 가장 치욕적인 날이 아니라 해방이 된 지 78년이 지났어도 과거 역사에 대해 반성하지 않고 역사의 정기를 바로 세우지 못하고 있는 2023년 오늘이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날이 아닐까?(이전 글 일부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