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조선'을 '부준조선'으로 부르자

'단군-기자-위만'이 아닌 '단군-부준-위만'의 흐름으로

by 나만의한국사

단군이 세운 조선을 단군조선, 기자가 세운 조선을 기자조선, 위만이 세운 조선을 위만조선이라고 보고 있다. 그런데 조선의 변천을 단군조선 – 기자조선 – 위만조선이라 부르는 것은 맞지 않다. 중국은 단군조선은 인정하지 않고 기자조선과 위만조선을 중국의 역사라 부르고 최근 ‘기씨조선사’, ‘위씨조선사’라는 책도 펴냈다.


위만이 몰아낸 조선의 왕은 준왕이었다. 준왕의 아버지는 부왕[否王 또는 비왕(丕王)]이었다. 중국 기록에는 준왕이 기자의 40 세손이라고 하였다. 부왕과 준왕을 기자조선에 포함시켜 이해해 왔다. 이는 기자를 중국인으로 보고 준왕을 억지로 기자의 후손에 끼워 맞춘 것이다.


부왕과 준왕의 계보를 기자조선에 포함시킬 것이 아니라 따로 명명할 필요가 있다. 기자조선이 아니라 ‘부준조선’이라 부를 것을 제안한다. 단군조선이나 위만조선처럼 ‘부준’이 나라를 세운 인물은 아니지만 나라를 세운 인물을 모르더라도 그 후손의 이름이 전해진다면 후손의 이름을 따서 나라 이름을 지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준왕 하면 당연히 기자조선으로 이해할 것이 아니라 우리 입장에서 ‘부준조선’으로 이해하고 기자와의 차별성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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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펴낸 기씨조선사, 위씨조선사[박준형 교수 페이스북 사진]


중국은 부왕과 준왕을 기자의 후손으로 만들고 위만을 역적으로 몰았다. 우리도 그걸 따라 위만에 대한 평가가 박했다.


준왕이 남쪽으로 내려와 기자의 중국문화 전통이 마한에 전해졌다고 보았다. 나중에 조선시대에는 마한이 정통이라는 마한 정통론이 등장하기도 했다.


중국이 만든 기자 프레임에 갇힌 것이다.


조선에 가장 영향을 끼친 인물 가운데 하나가 기자인데 지금 교과서는 기자를 언급하지도 않고 있다. 기자를 모르고 조선시대를 공부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책에 언급하지 않는다고 기자를 극복하는 게 아니다.


우리가 이름을 다시 지어야 한다. '부준조선'은 남으로 내려와 기자조선의 전통을 전한 게 아니고 단군조선을 계승한 부준조선의 전통을 전한 것이다.


나도 문제의식 없이 지금까지 '기자조선'이란 말을 썼는데 이제부터 기자는 그냥 '기자'라고만 부를 생각이다.


글. 역사학자 조경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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