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가장 많이 되뇌고 있는 단어가 분수, 깜냥, 그릇이다. 예전에는 '네 분수를 알아라.'라는 말이 정말 듣기 싫었다. 누군가 가진 잠재력을 폄하하는 것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 가랑이 찢어진다.'라는 속담도 같은 이유로 싫었다. 그러나 자기 해체의 길을 걷고 있는 지금 그런 격언들이 진리로 다가온다. 일상에서 알아차려지는 몸과 관계의 부담들이 대부분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초과했을 때 생기기 때문이다.
최근 나의 주된 의식의 초점은 몸과 관계의 영역을 향해 있다. 예전에는 '묻지 마' 방식으로 몸과 관계를 대했다면, 요즘은 우선 현재의 상태를 먼저 주의 깊게 살핀다. 몸의 경우 얼마나 긴장되고 경직되어 있는지, 체력이나 컨디션은 어떤 상태인지 확인하고 가급적 무리하지 않는 쪽으로 행동한다. 마찬가지로 대인관계 또한 꼭 필요한 만남이 아닌 영혼 없이 지껄여야 하는 소모적인 만남은 가급적 삼가는 쪽으로 행동한다. 핵심은 체력과 정신력을 불필요하게 낭비하지 않는 방향으로 행동한다는 것.
가급적 그런 방향을 지향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지만, 오랫동안 고착화된 힘이 센 습관들의 저항에 자주 부딪히게 된다. 몸의 경우 의지력이 떨어졌을 때 강해지는 식탐이 대표적이고, 관계의 영역에서는 편찮으신 부모님을 제대로 모시지 못한다는 죄책감, 아이들의 미래와 직장에서의 생존 문제에 대한 걱정 같은 것들이다. 이런 무의식적 생사심들은 끊임없이 의식의 영역으로 독촉장을 내밀며 심신의 에너지를 요구한다.
자신의 분수를 헤아린다는 것이 곧 인간이 지닌 잠재력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잠재력은 저절로 발현되는 것이지, '나'의 의지력으로 스스로의 심신을 분쇄해가며 안간힘을 쓴다고 생겨나지 않는다. 무한 잠재력의 발현에 앞서, 심신의 분수를 헤아리는 것이 먼저다. 결국 자기 분수를 헤아린다는 것은 스스로를 제한하는 착각의 '나'를 자각하는 것이며, 무한 잠재력은 착각의 '나'가 해체되었을 때 본래 있던 것이 드러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