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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빌딩 숲속 월든 Aug 26. 2023

남의 말, 나의 말

13년 전 참여했던 인문학 공부모임이 있었다. 지금은 세상에 계시지 않지만 당시에 자기계발 분야에서 아주 유명한 K 선생님이 지도하시는 모임이었다. 수업료가 무료인 대신 1년 후 자신의 책을 써내야 한다는 쉽지 않은 조건이 있었다. 커리큘럼은 사전에 선정된 철학, 역사, 신학 등 인문학 관련 서적을 매주 1권씩 읽고, 밑줄 긋고, 밑줄 그은 부분을 필사하고, 왜 밑줄을 그었는지에 대한 이유를 쓰고, 책에 대한 전반적인 리뷰와 함께 내가 저자였다면 책 구성을 어떻게 했을지에 대한 견해까지 작성하는 것이 첫 번째 과제였고, 책의 테마와 관련된 A4 용지 1~2장 분량의 칼럼을 쓰는 것이 두 번째 과제였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매주 천 페이지 이상의 책을 읽고, 리뷰와 칼럼까지 작성해야 하는 입에 단내 나는 과정을 6개월 동안 참여하고, 이 수업의 백미인 해외 탐방(르네상스 컨셉으로 열흘간 이탈리아에 다녀옴) 중에 친퀘테레 라는 지중해 해안마을 바다에서 헤엄치다 디스크로 허리를 심하게 삐끗하게 되었고, 그 사건을 계기로 모임에서 이탈했다. 이 벅찬 프로그램에 올인을 하기 위해서는 정상적인 회사 생활이 거의 불가능했다.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에는 역부족이었고, 안간힘을 쓰며 두 줄을 모두 잡다가 번아웃이 되었다. 결국 내가 내린 결론은 위태롭게 한 발을 걸쳐놓고 있었던 익숙한 회사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10년 이상 지난 시점에서 돌이켜보면 그 짧은 6개월은 내 삶에 커다란 터닝포인트였던 것 같다. 결론적으로 그 과정을 완주하지도, 나의 책을 집필하지 못했지만, 전과 후가 분명 달라졌다. 처음 그 모임에 지원했던 동기는 K 선생님에 대한 동경이었다. 20년간 직장 생활을 하고, 베스트셀러를 쓰면서 멋지게 회사에서 나와 직장인들에게 변화를 인도하는 선지자 같았다. 매년 자신의 저서를 한 권씩 집필하고, 그 책을 기반으로 강연을 하는 것이 그분의 비즈니스 모델이었다. 그분을 롤 모델로 삼고 따라 하면 나도 그렇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당시 6년 차였던 직장을 그만두고 커리큘럼에 올인 하려다 쫄려서 2중 생활을 선택했다.
 
수업과정 중 가장 힘들었던 것은 두꺼운 책을 읽고, 중요한 부문에 밑줄 긋고, 북리뷰를 쓰는 것이 아니었다. 그 책의 내용을 기반으로 '나의 말'을 칼럼으로 정리하는 과제가 가장 어려웠고, 가장 큰 스트레스였다. 처음 한두 편은 예전의 깜냥으로 어떻게든 적어냈다. 이후 밑천을 다 쓰고 난 뒤가 문제였다. 꿰어야 할 구슬인 경험치도 부족했고, 설령 구슬이 서 말이라고 해도 보배로 꿰어낼 수 있는 실력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있어 보이려고 권위 있는 사람들의 말을 인용하는 것으로 글을 떡칠했고, 진짜 나의 말은 거의 담기지 않았다. 저 선생님만 그대로 따라 하면 저 선생님처럼 될 수 있다고 여겼던 것이 엄청난 착각이었다는 현타가 찾아왔다.
 
이탈리아에서 삐끗한 허리로 고통받으며 돌아오던 비행기 안에서 챙겨갔던 법정스님의 저서의 한 구절을 읽으며 이 모임을 그만두기로 마음 먹었다. "투철한 자기 결단도 없이 남의 흉내나 내는 원숭이짓 하지 말라. 그대 자신의 길을 그대답게 갈 것이지 그 누구의 복제품이 되려고 하는가?" 지난 6개월 동안 치열했던 몸부림에 진심 아닌 것은 단 하나도 없었지만, 방향이 잘못되었던 것이었다. 나다운 길이 아니라 남을 흉내 내는 원숭이짓을 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멋진 책을 써서 베스트셀러의 저자가 되고, 그 유명세로 강연을 통해 부와 명예를 얻으려는 다소 속물적인 의도로 영끌을 했던 것이었다.
 
그 모임에서 나오게 된 이후 마음이 끄는 곳을 무작정 따라갔다. 특히 불교 기초교리도 공부하고, 반야심경, 금강경 등의 경전 해설서도 탐독하고, 컬렉션 해놓은 법정스님 수필도 다시 정주행 해보고, 열심히 하던 습에서 벗어나지 못해 심신이 고생하다 병원 신세도 지고, 이런저런 공부모임 어슬렁거리다 운 좋게 깨어나고, 후공부의 인연까지 접하게 되었다. 그때 이후 13년이란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내 이야기를 큰 부담 없이 쓸 수 있게 되었다. 내가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추구했던 것이 아니라, 내 의도와는 무관하게 그런 인연이 찾아온 것이다. 물론 아무런 인과 없이 갑자기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글을 잘 쓰고 싶다, 좋은 글을 써서 책을 엮어야겠다는 의도 따위는 1도 없이, 자주 배설하는 글을 휘갈겨 쓰곤 했다. 크고 작은 몰스킨 수첩에 만년필로 써보기도 하고, MS 오피스의 One-Note 프로그램을 자주 활용하여 틈틈이 휘갈기곤 했다. 그렇게 마구잡이로 쓰고서는 다시 읽어보지도 않았다. 주된 내용은 그 당시의 해소되지 않는 불편한 감정 등의 심리상태와 그런 상태를 유발한 원인들에 대한 이야기였던 것 같다. 어차피 다시 읽을 의도가 없었기 때문에 의식의 흐름에 따라 떠오르는 단상을 마구잡이로 휘갈겨 적었다. 돌이켜보니 이런 류의 글쓰기 과정이 내 의도와는 무관하게 10년의 법칙, 1만 시간의 법칙이 적용된 것 같다.
 
유명한 작가들의 경지에 도달했다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데 불편함이 많이 줄었다는 의미다. 10년 이상 쌓인 구슬도 적지 않고, 어쩌다 보니 꿸 수 있는 요령도 생겼다. 가장 큰 변화는 남의 말을 거의 인용하지 않고 나의 말을 중심으로 쓰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된 결정적 계기는 '깨달음 수업' 카페에서 과제를 하던 중 소공님이 내가 작성한 과제를 '살림 펼쳐 보기' 메뉴로 옮겨주신 사건 이후였다. 그동안 쌓인 이해와 경험자량을 표현하는데 자신감을 얻게 된 것이다. 돈오를 선언한 것과 비슷한 맥락의 효과인 것 같다. 어떤 단계를 넘었다는 확신이 들면 스스로, 저절로 그렇게 조율이 된다.
 
내가 살림을 펼치는 방향은 심플하다. 어떤 경지에 도달했음을 잘난체하는 것이 아니라, 가급적 많은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언어로, 지금 여기에서 내가 처한 경계를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처음엔 어설프고 투박해도 도반들과의 탁마를 통한 피드백을 통해 관점이 확장되고, 확장된 만큼 다듬어지게 된다. 또 다른 방향은 '나의 말'을 중심으로 살림을 펼치는 것이다. 살림 펼침의 목적 자체가 '자기 말'을 지니는 것이다. 경전과 스승의 말과 글을 통해 배웠으므로 그 말 그대로 인용하면 편하지만, 어설프더라도 내 안에서 우러나는 말을 적는 것이다. 느릴 것 같지만 가장 확실하게 단단해지는 길인 것 같다.
 
이해자량을 강화하는 '법등명'과 경험자량을 강화하는 '자등명'의 선순환구조는 이렇다.
 
① 남의 말로 그려진 법등명 → ② 자기 스스로 확인하는 자등명 → ③ 자기 말로 밝히는 법등명 → ④ 진리로 살게 되는 자등명 → ⑤ 역지사지하며 추론하고 상상하여 세우는 법등명 → ⑥ 창조하여 쓰는 자등명
 
지금 내 경계는 한 ①~④ 단계를 한 사이클 돌고 다시 남의 말로 그려진 법등명을 실천하고 있는 중이다. 뉴로 사이언스에 대한 책들을 통해 그동안 추상적이고 관념적으로 이해했던 '의식'과 '나'가 생성되는 생물학적 메커니즘을 정교하게 이해하게 되고, '이것, 생각'으로 상징되는 현상 작용에 대한 이해가 뚜렷해짐으로써 그 바탕인 실상에 대한 이해도 자연스럽게 밝아지는 것 같다. 이해가 밝아졌다면 스스로에게 적용하여 검증되면서 자연스럽게 체득된다. 그 과정이 조작과 추구의 형태여도 연기의 일이므로 완벽하게 아무런 문제가 없고, 저절로 체득이 된다면 진리를 효율적으로 적용하며 살아지게 되는 것이므로 더할 나위 없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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