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berg Variaions, BMW 988 :var25.
얼마 전 송승환 씨가 배우로 출연한다는 <웃음의 대학>을 세종문화회관 S 시어터에서 관람하게 되었다. 난타와 동계올림픽 감독을 지휘했던 연출가로서의 그가 직접 출연한다는 연극이다. 사실 나는 그날 이 연극을 보지 않는 것이었다. 이미 오후 프로그램으로 대학로에서 <라면>을 보기로 했기에. 사서 샘들 연수에 나를 불러낸 건 내 친구 y다. 백수가 뭘 그리 바쁘냐는 그 녀석의 핀잔이 내심 마음이 쓰이기도 했고, 그날은 이상하게도 나는 그곳에 있어야만 할 것 같았다.
친구는 나를 불러놓고 역시나 다른 샘들과의 대화와 챙겨야 할 사람들 때문에 무척 바빠 보였다. 사교성이 열려있고 나와는 다른 E형의 친구는 내게 티켓만 건네고, 다른 분들을 챙겼다. 그럼에도 그것이 내게는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고, 나는 다른 사람들과의 이야기로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 그동안 연수는 잘 받고 있어요?' ' 통 소식도 안 전해주고 쉼이 좋지요?"라고. 물어봐 주는 사람들 덕분에 나는 그 안에서 행복한 백수가 되어가고 있었다.
송승환 배우가 등장한다. <웃음의 대학>은 2인극이다. 9년 만에 다시 시작되는 연극으로 인기가 꽤 높았던 모양이었다. 우선 노장 송승환이 배우로 등장한다는 사실이 팬층을 설레게 할 수 있는 요소 같았다. 미타니 코키(일본 최고의 극작가라고..)의 대표 작품으로 1940년, 전시 상황이라는 이유로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희극을 없애려는 냉정한 검열관과 웃음에 사활을 건 극단 '웃음의 대학' 작가가 벌이는 7일간의 사건이다. 검열관의 무리한 요구로 공연 허가를 받으려는 작가는 대본을 수정해 나가지만, 그 과정이 재미를 더하게 되고. 웃음을 준다.
내 옆자리에는 일면식이 없는 선생님과 함께 앉게 되었다. 연극 속에서 난 졸음을 참지 못했고, 꾸벅거리기 시작했다. 대학로에서 본 연극만으로도 피곤했고, 밥도 먹었고, 이 연극이 그리 재미나게 느껴지지 않았다. 송승환 배우가 명 연기를 펼치는 것 까지는 알겠지만, 끄덕거려지지는 않는 그냥 그렇고 그런 이야기로 들려왔다. 그런데 내 옆의 선생님은 너무나 깔깔거리며 웃으시는 거다. '이런 나만 제대로 연극을 느끼지 못하는 건가' 싶은 마음으로 눈을 지그시 감고 꾸벅거렸다. ㅋ
그 선생님은 나와는 달리 연극에 빠져서 몰입하고 계셨다. 아... 예술을 받아들이는 관객의 자세다. 송승환 배우 때문에 바쁜 가운데서 연극을 신청하셨다는 그분의 말씀이 괜한 소리가 아니었다. 선생님의 깔깔 거림은 나의 무의식에서도 너무나 명쾌하고 선명했고 진정성이 느껴졌다. 내가 좋은 음악을 들었을 때의 그 짜릿함인가. 졸면서도 이런 생각이 들다니 나도 참 유난스럽다.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내게 그런 짜릿함의 경험을 해 준 바흐의 곡이다.유명한 곡들이 너무나도 많은 작곡가 바흐. 그의 곡들 중 골드베르크는 굴렌 골드의 뿔테안경과 흥얼거림만으로도 충분히 각인되게 해주었다. 많이들 들어봤을 선율이지만, 얼마나 많은 연주자들의 손을 거쳐서 다양하게 재현되었는지 모른다. 버킹구 올라프손은 “14세 때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의 연주로 처음 들었다"라며 “저의 뇌와 감정을 모두 폭발시킨 작품”이라고 밝히기도 했고, 그 역시 얼마 전 앨범을 내고 내한공연도 했었다.
내 옆자리 선생님이 연극 예술 안에 몰입된 순간이 졸음 속이지만 기억이 난다. 나는 매번 골드 베르크를 들을 때마다 몰입의 순간으로 흘러 들어간다. 바흐의 곡은 흔하고 흔할 수 있지만, 아끼고 아껴서 들을 수밖에 없는 음악이다.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1741년에 출판되었으며, 정식 제목은 "아리아와 다양한 변주곡으로 이루어진 연주곡"이다.
머라이 페라이어는 현대를 대표하는 피아니스트로, 매우 섬세하고 정교하며, 바흐의 음악에 대해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페라이어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음악적 깊이와 해석이 풍부하다.
풍부한 자신만의 해석을 보여주신 '머라이 페라이어'의 연주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