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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라떼 Nov 03. 2024

나의 아파트와 너의 APT.

얘들아 나도 알아

이어폰을 귀에 꽂고 멜론을 켠다. 즐겨찾기 목록에 있는 익숙한 음악을 기대했는데 뜬금없는 노래가 울려 퍼진다.


아파트 아파트 아파트 아파트 아파트 아파트 오오오오오

아파트 아파트 아파트 아파트 아파트 아파트 오오오오오


이게 모여? 당황한 순간 처음 보는 애벌레처럼 꿈틀대는 영어가사들.


찾아보니 로제와 브루노마스의 콜라보 싱글 APT. 다. 이들이 누구던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나도 알고 너도 아는" 가수(요즘 애들 말로는 팝아티스트)가 아니던가. 공개되자마자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야말로 초초초대박을 치고 있다. 국내음악방송에서 1위를 했다고 브루노 군이 인스타에 한국어로 감사인사까지 남겼다지.


우리나라의 술게임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는 노래의 기원에서부터

일상 속 평범한 공간인 아파트를 나만의 특별한 공간 클럽으로 변신시켜 미치도록 즐겨보자는 도도한 메시지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요즘 노래가 아닐 수 없다.


(로제 인스타그램)




그에 반해 나의 아파트는 어떠한가.                                                      

나를 떠난 너를 바보처럼 잊지 못해 

바람 부는 캄캄한 밤 다리를 건너고 갈대숲을 헤쳐 찾아가고 또 찾아갔건만 

아무도 없는 쓸쓸한 아파트만 속절없이 바라보다 돌아온다는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구슬프고 처절한 신파의 상징 아니겠는가.


그러나 "으싸라으싸 으싸라으싸" 이 마법의 주문 하나면 어둠을 밝히는 환한 이 되고 누군가에겐 더없는 응원이 되는 아이러니.





너의 아파트를 살짝 엿본다. 너는 파티준비로 여념이 없다. 빨간 미니드레스에 뾰족뾰족 하이힐을 신고 한 손에는 샴페인잔을 또 한 손엔 담배 한 개비. 음악에 맞춰 사뿐사뿐 움직이는 너의 두 눈엔 생동감이 넘치고 너의 입술엔 까르르 웃음소리 쉴틈이 없다. 너의 행복을 마주하고 기꺼이 뒤돌아서는 나.

(사실 등짝 스매싱에 "이노무 지지배야"로 시작하여 "내가 못살아"로 마무리되는 잔소리를 참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너 또한 나의 아파트를 들여다본다. 왜 이리 답답하냐고, 질척대지 말고 너의 삶을 살아가라는 타박 대신 나를 위로해 줄 한 송이 꽃이나 향기로운 커피 한잔 건네줄지도 모르지.  


화려하기만 한 너의 삶에 나는 언제든 기대 쉴 안식터가 될 것이고 

공허한 나의 삶에 너는 싱그러운 생기를 불어넣어 줄 것이다.

그렇게 우린 서로를 알아가는 이웃이 된다.




대본을 외우듯 하루종일 너의 APT. 를 불러본다. 물론 영어가사는 제외.


드디어 수업시간, 나는 무대의 주인공이 된다.  나지막이 흥얼거려 보는 무심한 듯한 내 노랫소리에 문제를 풀던 아이들의 두 눈이 동그래진다.

"선생님도 이 노래 알아요?"

의기양양해진 표정을 한껏 숨기고 짐짓 아무렇지 않은 듯 툭 건네는 한마디. 


야 나두 다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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