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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라떼 Oct 25. 2024

꾀병감별사

마음이 아픈 아이들

“선생님~ 배가 아파요. 장염인가 봐요.”

돌아보니 방금 전까지만 해도 빵끗빵끗 웃으며 옆 친구와 수다를 떨던 수진이다.


삐뽀삐뽀 머릿속에 경보음이 울린다. 이것은 호환마마, 곶감보다 무섭다는 꾀병이다. 더군다나 꾀병은 순식간에 퍼지는 전염병이 아니던가!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수많은 꾀병 중 딱 맞는 퇴치법을 찾아내야 한다.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수진이에게 다가간다.

“수진아, 배가 많이 아파?”

“네. 도저히 문제 못 풀겠어요”

이때 진짜 아프냐고 다그치면 안 된다. 정말 아파 보인다고 좀 쉬라고 얘기한다. 수진이 얼굴에 살짝 미소가 맴돈다. 그리고 나는 비장의 카드를 든다.

“수진아 너무 아쉽다~ 오늘 선생님이 우리 친구들 주려고 맛있는 간식 준비했는데 수진이는 못 먹겠구나. 혹시 좀 쉬다 괜찮아지면 선생님한테 꼭 얘기해. 수진이 간식 남겨놓을게”

채 2분이 지나지 않아 수진이는 다 나았다며 간식을 받아 들고 문제를 풀기 시작한다. 안 아파 다행이라고 수진이를 꼭 안아주면 미션 클리어다.


곧 두 번째 타자 등장, 이번엔 주영이다.

“선생님~ 목이 너무 아파서 목소리가 안 나와요”

당황하지 않고 걱정스레 말을 건넨다.

“요즘 감기가 유행이라더니 우리 주영이 감기 걸렸나 보구나. 근데 어쩌지? 주영이가 연산을 잘해서 오늘 2학년 동생들 구구단 외우는 거 도와달라고 부탁하려고 했는데 안 되겠네. 다른 친구에게 말해봐야겠다”

잠시 머뭇거리던 주영이는 물을 마시면 좋아질 거 같다고 꿀꺽꿀꺽 마시고는 씩씩하고 큰 목소리로 낭창낭창 동생들을 가르친다. 제법 의젓하게 선생님 티가 난다. 오늘 주영이가 아픈데도 도와줘서 큰 힘이 됐다고 어깨를 토닥여주면 문제를 다 풀고도 끝까지 남아 청소까지 함께 해준다.


역시 우리 반 말썽꾸러기 지호가 빠질 리가 없지.

“선생님~ 손가락이 아파서 글씨를 못쓰겠어요”

아프다는 손가락을 아무리 유심히 쳐다보아도 아픈 구석을 1%도 찾아볼 수 없다. 슬쩍 곁눈질로 문제집을 보니 겨우 한 문제 풀고는 오늘의 방패막이로 손꾸락을 선택한 듯하다. 이럴 땐 호들갑이 제격이다.

“우와 우리 지호 대단하다. 손가락이 이렇게 아픈데도 꾹 참고 벌써 한 문제나 풀었네. 선생님 정말 감동했어~ 한 문제만 더 풀어볼 수 있을까?”

지호는 큰 결심을 한 듯 자세를 고쳐 앉으며 한번 해보겠다고 말한다. 장난 한번 없이 끝까지 문제를 다 풀고 숙제까지 내달라는 지호. 물론 중간중간 내가 쳐다볼 때마다 아팠었던 손가락을 호호 불어대는 것도 잊지 않는다.


나는 기초학력교사이다.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은 이전 학년의 학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현행학습이 어려운 아이들이다. 공부 못하는 아이들로 낙인찍힌, 그리고 스스로 낙인찍은 아이들. 그러나 그저 공부를 안 해서 그런 거라며 너만 열심히 하면 된다며 모든 책임을 아이몫으로 떠넘겨버리는 건 가혹하다.


학습이 이루어지지 않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아이들의 마음이 아픈 경우가 대부분이다. 주위의 무관심, 가족구성원의 결여, 부정적인 피드백, 왕따 등이 대표적인데 이럴 경우 아이들의 마음만 바라봐줘도 눈빛이 따스해지고 얼굴엔 웃음이 한가득이 된다.


마음을 바라본다는 건 아무런 대가 없이 나는 너를 믿는다는 것이다. 믿음이 없는 눈길은 그저 아름답게 포장된 허울이어서 아이의 닫힌 마음 주변을 서성일뿐 열고 들어가 어루만져볼 수도 그 안에 자리 잡은 상처를 치유해 줄 수도 없다.


꾀병은 나 좀 봐달라는 아이들의 신호이자 나를 향한 은밀한 구애~ 이렇듯 가슴 절절한 눈빛이 또 어디에 있을까. 외면할 수 없어 생각해 낸 최고의 꾀병퇴치법은 바로 "고객맞춤형 칭찬"이다. 나는 아이들의 개인주치의가 된다. 병명은 같더라도 증상은 다양하며 원인 또한 같을 수 없다. 당연히 처방 또한 다 달라야 한다.


신뢰받는 주치의가 되려면 아이들을 진심을 다해 자세히 보아야 한다. 아이들은 무심한 척 딴청을 피우지만 내 눈치를 살피는 데는 귀신이다. 고로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는 절대 금물이다. 나의 열걸음 동안 너의 한걸음, 우리는 그렇게 가까워진다.


멀리서는 보이지 않던 너의 작은 몸짓과 나지막한 혼잣말이 나를 깨우고 나의 진심이 너에게 다다랐을 때,


이제 공부할 준비는 끝!!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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