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있잖아,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

하늘땅만큼 나도 네가 참 좋아

by 마이라떼

“난 있잖아,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 하늘땅만큼.”



어린 시절 티비에서 방영했던 ‘달려라 하니’ 주제가의 도입부는 이렇게 시작한다. 그 당시 국민학생(지금의 초등학생)이였던 나는 그 가사가 왜 그렇게나 마음에 들지 않았던지. 나는 하니를 보며 이렇게 생각하곤 했다.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좋다구? 말도 안돼. 세상에 더 좋은 게 얼마나 많은데.’


물론 나도 우리 엄마가 좋다. 하지만 세상에서 제일 좋다는 말에는 동의를 할 수 없었다. 잠시 변명을 해보자면 아마도 8~9살 무렵의 어린 나에겐 엄마보다 더 좋은 것들이 많았다. 매일 보던 티비 속 만화도 나의 즐거움의 일부이기도 했으니까. 어린 시절 엄마를 잃었던 하니. 하니에게 엄마는 어떤 존재였을까? 외로워서 눈물이 나면 바람처럼 달리던 하니의 모습에 짠한 마음이 들면서도 쉽사리 공감하지 못했던 그때의 나. 생각해보니 나는 엄마에게 그렇게 사랑을 표현한 적도 그리움을 표현한 적도 없는 무뚝뚝한 장녀 그 자체였다. 늘 옆에 계셨기에 엄마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게 서툴렀는지도 모른다.






시간이 흐르고 나 또한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그리고 어느새 내 아이도 내가 하니를 즐겨보던 그 나이가 되었다. 하지만 입학 후에도 아이는 학교에 도통 적응하지 못했다. 아침마다 실랑이를 벌이고선 떨려하는 아이의 손을 잡고 매일 교문 앞까지 바래다 주었다. 헤어지기 싫다는 아이를 교문 안으로 등 떠미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 등교하는 다른 친구들의 인파에 휩쓸려 학교로 들어가는 아이의 모습을 보았다. 아이의 모습이 시야에서 점점 사라지려 하고 있었다. 아이가 코너를 돌아서 사라지는 것을 확인한 나는 집으로 돌아가려고 뒤돌아 섰다. 교문에서 100미터 정도 걸음을 옮겼을 때였을까?


네가 달려오던 그 길이 너에겐 몇m처럼 느껴졌을까?


뒤에서 누군가가 나의 허리를 와락 안았다. 그 순간 들고 있던 핸드폰을 바닥에 떨어뜨릴 뻔 했다. 황급히 뒤를 돌아본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아이였다. 가빠르게 내쉬는 숨소리, 살짝 떨리고 있는 어깨 위로 시선을 옮기자 흘러내린 눈물로 범벅된 아이의 얼굴이 보였다. 여기까지 달려왔구나. 이미 교실에 들어갔어야 하는 시간인데 아이는 나를 찾아 교문 밖으로 나온 것이다. 순간 가슴이 철렁해서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이를 꼭 안아주는 수 밖에.


“준아~교실에 들어가야 하는 시간이잖아. 왜 다시 나왔어? 엄마가 다른 방향으로 갔다면 우리는 엇갈렸을 수도 있어. 위험할 뻔 했잖아.”


혼내지 않으려고 했지만 순간 나와 길이 엇갈렸다면 아이가 길을 잃어 버렸다고 생각하니 아찔했다. 나도 모르게 잔소리가 입에서 나오고 있었다. 그 때 나의 표정은 과연 어땠을까.


“엄마, 난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 엄마~ 사랑해요. 엄마가 너무 보고 싶었어요.”


아이의 순수한 고백 앞에서 나는 도저히 아이를 혼낼 수가 없었다. 다시 아이의 손을 꼭 잡고서 우리는 교문으로 발길을 향했다. 아이도 분명 하니처럼 엄마 생각으로 100m를 달려왔을테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존재를 향해 뛰어가는 아이의 마음을 내가 어떻게 이해하겠는가. 그 순수한 사랑에 경외심이 들 뿐이다.

엄마를 생각하며 달리던 하니의 마음을 이제는 알겠다




난 있잖아.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 하늘 땅 만큼.

엄마가 보고 싶음 달릴 거야. 두손 꼭 쥐고.

달려라 달려라 달려라 주니. 이세상 끝까지 달려라 주니.



사진:pixabay

일러스트:마이라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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