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원하는 걸 너도 원하고

이게 모전자전이지

by 마이라떼




또 시작이다.


“엄마~엄마아~ 포켓몬 인혀어어엉~사 주세요.”

“엄마, 포켓몬 카드 새로 나온거 없나 보러가면 안돼요?”


1999년 수능을 앞두고 있던 나는 과연 알았을까? 2022년까지 20년이 넘는 시간동안 포켓몬스터가 현역일거라는 걸. 20년 후의 미래의 아이들도 포켓몬이라고 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거란 걸 말이다. 내가 낳은 내 자식이 나처럼 똑같이 엄마에게 포켓몬 인형을 사달라고 귀에 피가 나도록 얘기하고 있다니. 자업자득이다. 싱크대 앞 내 몸은 아이의 요구사항에 맞춰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내가 원하는 걸 너도 원하는 구나.


시계를 돌려 1999년 수능을 앞둔 가을 어느 날. 무서울 것 없던 세기말 수능 세대가 바로 우리였다. 교실에선 수능 날 지구가 멸망하게 해 달라고 비는 친구, 하늘에서 찍기신이 내려와 대박을 기원하는 친구들이 소원 배틀을 펼치고 있었다. 인생에서 갑이 될 수 있는 유일한 기회 고3. 수능을 앞둔 나의 소원은 바로 피카츄 인형이였다. 노랗고 복슬복슬한 털을 가진 피카츄 인형. 그것도 짝퉁 말고 닌텐도 정품으로.


“엄마, 나 피카츄 인형 사주면 수능 잘 칠께. 피카츄 인형 사주면 안 돼?

나 피카츄 안고 자면 수능 너무 잘 볼 수 있을 것 같아. 응?응?”


만화 보느라 공부를 뒷전으로 버려둔 딸의 한심한 부탁에 엄마가 흔쾌히 오케이사인을 보냈을 리가 없었다.돌아오는 답은 “도대체 수능에 그게 왜 필요하니.” 협상결렬이다. 그 당시 물 건너 들어오는 닌텐도 정품 피카츄 인형은 구하기도 힘들고 비쌌다. 지금처럼 자유롭게 수입되어 들어오는 분위기도 아니였으니까. 짝퉁은 애니매이션의 귀여운 피카츄 얼굴을 제대로 구현하지도 못했다. 눈 위치가 이상해. 코랑 입 모양은 왜 이래. 털의 색감도 질감도 진품이 NEXT LEVEL 인걸. 우리 집 형편에 짝퉁이라도 사주면 감사합니다 해야 할 텐데 쓸데없이 그런데 눈이 높았던 나는 집요하게 엄마를 조르고 또 졸랐다.


뭣이 중한데.



그러게나 말이다. 뭣이 중한데, 고3이 왜 그렇게 조르고 졸랐나. 반쯤 포기한 상태로 하교 후 방으로 들어왔던 그 순간, 책상 위에 보이는 노랗고 복슬복슬한 인형. 피카츄다 피카츄.


그 때 나는 세상에서 피카츄가 제일 귀여운 생명체라 생각했다.

피카츄 라이츄 파이리 꼬부기 버터플 야도란 피죤투 또가스~

서로 생긴 모습은 달라도 우리는 모두 친구~(맞아)


인형을 안고서 노래가 절로 나온다. 피카츄야, 우리 서로 만나기까지 너무 힘들었지. 그 순간만큼은 수능 만점이 부럽지 않았다. 아니, 수능 만점을 맞을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솟아났다. “엄마. 고마워요! 나 진짜 수능 잘 칠께.” 책상 앞에 놔둔 피카츄 인형이 나에게 응원을 보내주고 있었다. 힘을 내봐 그래 힘을 내봐. 용기를 내봐 그래 용기를 내봐.


그리고 수능 날,

나는 수능을 망치고 말았다.



사진: pixabay

일러스트:마이라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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