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은 언제나 하나니깐
그때의 나는 정말 미칠 것 같았다.
임신중독증으로 3주나 일찍 응급수술로 아이를 출산했다. 그때의 아이의 몸무게는 불과 2.5킬로. 엄마 뱃속에서 나온 아이는 한 없이 작았다. 그래서일까. 조리원에서 가장 작았던 아이는 선생님들의 특별대우를 받았다. “애는 깨워서라도 먹여야 하는 아이예요. 몸무게가 늘질 않잖아요.” 약복용으로 인해 모유수유도 하지 못하는 무능력한 엄마가 해 줄 수 있는 일이라곤 분유를 열심히 먹이는 것뿐이었다.
아이는 계속 아팠다. 일찍 태어난 탓도 있겠지만 선천적으로 소화기관이 좋지 않았던 것 같다. 뭘 먹어도 토하고 설사하고. 한 번쯤 보고 싶었다. 소문의 황금변 말이다. 기저귀를 열 때마다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하느님, 제발.
(이때의 나는 무교였다)
하지만 결과는 늘 똑같았다. 가뜩이나 잘 먹지도 못하는데 토하고 설사하니 몸무게가 잘 늘 리가 없다. 언제쯤이면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앞이 보이지 않는 막막한 터널을 걷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그때까진 그리 이 일을 유별나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다.
아이의 상태가 많이 심해졌다고 느낀 건 어느 날 밤이었다. 자고 있는데 소리가 들렸다. 뿌지직하는 소리. 심상치 않다. 이건 설마?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이는 분명 자고 있는데 이게 어찌 된 영문일까.
‘자면서도 똥을 쌀 수 있는 거야?’
나는 그 순간 탐정으로 빙의하여 이 상황이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추론해 보았다. 자면서 똥을 싸고 있는 아이 옆에 쪼그리고 앉아 핸드폰을 들고서 인터넷을 또 검색하고 검색했다. 깜깜한 방안을 희미하게 밝히고 있던 건 핸드폰 불빛이었다. 그날 저녁은 도저히 잠을 잘 수 없었다.
<명탐정 코난>의 노래가사처럼 아침에 눈을 뜨면 지난밤이 궁금하니까. 엄마는 아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때마다 해결방법을 찾아 고군분투하는 탐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아침부터 친정 엄마한테 전화를 했다.
엄마, 준이가 이상해. 큰 병원으로 가야겠어. 도와줘.
미친 듯이 짐을 챙겨서 KTX를 타고 친정에 있는 큰 병원으로 달려갔다. 결과는 심각한 탈수 증상과 장염. 계속된 설사로 장의 기능이 거의 마비가 되어 있었다고 했다. 자고 있으면 괄약근은 닫혀있어야 하는 게 정상이란다. 가뜩이나 늘지 않는 몸무게가 더 빠져있었다. 아이가 태어난 지 5개월째 되던 날이었다.
하루 이틀 입원하면 나아지겠지 생각했지만 한 번 고장 나버린 아이의 장은 그렇게 쉽게 낫지 않았다. 자면서 그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지만 입원해서도 그 소리는 계속되었다. 하루라도 편하게 자고 싶었다. 바로바로 아이의 엉덩이를 씻겨 줘야 짓무르지 않으니 불침번을 설 수밖에 없던 그때. 차라리 울어 주면 좋을 텐데. 조용히 자면서 그러고 있으니 어쩌겠나. 엄마가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워야지. 엉덩이를 씻으며 아이가 깨서 울면 다른 환자들의 눈치를 피해 유모차에 태우고 잘 때까지 병원 복도를 하염없이 걸어 다녔다.
병원 복도에서 5개월짜리 아이를 달랠 수 있는 방법은 그리 많지 않았다. 아이에게 동요를 불러 줬으면 좋았을 텐데 초보 엄마는 아는 동요도 별로 없었다. 어느새 밑천이 바닥났다.
그 당시 유튜브도 잘 활용하지 못했던 나는 아는 거라곤 만화노래뿐이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던 애니메이션 <명탐정 코난>의 주제가를 아이한테 불러 주었다. 조용히 그렇지만 아이에게 들릴 정도로 나지막이 불러 주었던 그 노래.
아침에 눈을 뜨면 지난밤이 궁금해. 오늘은 어떤 사건이 날 부를까. 모두들 어렵다고 모두들 안 된다고 고개를 돌리는 많은 사건들. 세상 사람들은 왜 왜 나만 바라볼까 난 내가 누군지 몰라 이 세상을 헤멜뿐야. 그래 이 세상에 해결 못할 것은 없어. 끝까지 포기 않고 풀면 되잖아. 나 어두운 세상에 이 험한 세상에 찬란한 빛이 될 거야~
노래가 끝난 뒤 유모차를 봤다. 어느새 아이는 새근새근 잠들었다. 어두웠던 병원 로비가 조금씩 제 색상을 찾아가고 있었다. 찬란한 빛이 밝혀 주는 아침이었다.
사진: pixabay
일러스트:마이라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