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에서 딸에게로 대를 이어가는 역사 공부 이야기
"척척박사 박사장"
생각해 보면 아빠를 아는 모든 사람들은 그렇게 말했다. 아빠는 모르는 게 없었다. 추억보정인가 싶어서 계속 옛 생각을 곱씹어 봐도 정말 아빠는 모르는 게 없었다. 번지르르한 학벌이 없어도 아빠는 늘 모든 사람에게 자신감이 있었다. 한 번 입을 열면 끝도 없이 나오는 이야기보따리를 한가득 가지고 계셨으니까. 무엇이든 물어도 무엇이든 대답이 나오는 아빠가 그땐 참 신기했다. 나도 어른이 되면 저렇게 모든 것에 대답할 수 있는 어른이 되는 걸까? 착각도 했다.
요즘 엄마표 00가 유행인데 아빠는 그 시절에 이미 나에게 아빠표 역사를 가르쳐 주고 계셨던 거다. 실생활 속에서 마주치는 모든 것에 호기심이 폭발하던 그 시기에 아빠는 귀찮아하지 않고 오히려 더 신나서 나에게 이야기를 해 주셨다. 이것의 유래는 어디에서 시작되었고 어떤 일이 일어났었는지 흐름에 따라 재미난 이야기를 듣다 보면 역사(history)는 멀리 있는 게 아니었다. 바로 우리 생활 속에서 숨 쉬고 있는 하나의 이야기(story)였다.
어린 시절을 회상해 보면 그 끝엔 항상 희미한 먹냄새와 책냄새가 남아있다. 일을 다녀오신 아빠는 늘 방 안에서 뭔가를 읽거나 쓰고 계셨다. 좁은 방에서 온 식구가 모여 살던 그 시절. 자연스럽게 아빠가 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중국 역사에 심취해 계셨던 아빠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며 배경에 대해 열띤 이야기를 해 주셨고 어느 순간 나는 아빠가 해 주는 재미있는 역사 이야기에 푹 빠져 들곤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인터넷이 있던 시기도 아니었는데, 아빠는 어떻게 그렇게 많은 역사 이야기를 알고 계셨을까? 중국역사뿐만 아니라 로마사, 중세사, 현대 전쟁사까지 질문만 하면 척척 대답하셨던 아빠. 결국 답은 하나였다.
생각해 보니 어려웠던 집안 사정에도 우리 집엔 책들이 꽤 있었다. 그 시대 책들이어서 한자가 대다수인 두껍고 어려운 책들 뿐이었지만 말이다. 누렇게 변색되어 버리고 쿰쿰한 냄새까지 나기도 했던 그 책들을 아빠는 보고 또 보셨나 보다. 그리고 아빠만의 언어로 만들어 자식들에게 이야기로 전해 주셨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도 나중에 아이가 생긴다면 아빠처럼 재미있게 이야기로 지식을 전달해 주고 싶다는 막연한 소망만 있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으며 세상에 대한 아이의 호기심은 날로 커져만 갔다. 끊임없는 아이의 질문 세례에 난 기억을 더듬어 아빠가 나에게 어떻게 대답을 해줬는지 기억하려 애썼다.
아빠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아빠~ 아빠는 어떻게 내 질문에 전부 대답을 해 줄 수 있었던 거야?
하지만 이 질문에 대답해 줄 아빠는 더 이상 이 세상에 계시지 않는다.
이제 나는 나만의 엄마표 역사이야기를 쓰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