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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장님으로 불렸던 그날

출산하고 팀장님이 될 거라고 상상이나 했겠어요?

by 마이라떼

2015년 5월 8일 어버이날. 예기치 못한 출산과 함께 나는 내 이름을 잃어버렸다.


나는 변한 게 없다고 생각했다. 단지 아이를 낳았다는 이유만으로 세상이 나를 보는 시선이 달라지리라 생각하지 못했다. 아이가 태어나며 나는 내 이름을 잃었고 00 엄마, 00 어머니로만 불렸다. 누군가 나를 이름으로 불러줄 일이 생길까? 나도 다시 일을 할 수 있을까? 나는 다시 사회로 돌아갈 수 있을까?


나의 쓰임에 대한 고민은 꽤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급기야 허리 디스크가 터져 수술대에 올랐을 땐 이제 나의 쓰임은 다 끝났다고 생각했다. 이런 몸으로 과연 뭘 할 수 있나. 누구도 나를 찾아주지 않을 거라는 불안감과 미래에 대한 막막함. 깊고 긴 우울감에서 스스로를 꺼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쓰임 찾기는 봉사로 연결되었다. 공동체를 위해 내가 도움이 된다는 기쁨. 그 안에서 나는 00 엄마가 아닌 온전한 나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었다. 미약하나마 내가 가진 능력이 누구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것이 굳이 돈이 되지 않아도 괜찮았다. 누군가가 나를 필요로 한다는 그 자체만으로 나는 살아갈 동력을 얻었다. 내 이름이 불릴 때마다 채워지지 않을 것 같았던 가슴속 뻥 뚫린 공간이 조금씩 메워지고 있었다. 힘들지 않았다면 그건 거짓말일 거다. 하지만 힘듦을 넘어서는 보람이 있었기에 나는 최대한 나의 쓰임을 다하기 위해 노력했다.


3127B382-155F-46FC-A93B-8794BA7B6A65_1_105_c.jpeg 명찰 디자인을 하며 누군가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는 일이 참 행복하다는 걸 느꼈다

그러던 어느 날, 브런치를 시작하게 된 작가님들의 모임에서 다문화아이들을 위한 글쓰기 클래스가 열린다는 소식을 접했다. 감사하게도 이 모임을 알리기 위한 홍보팀의 팀장이 되었다. 처음엔 팀장이라는 직함 자체가 어색하게만 느껴졌다. 팀원이라고는 한 명뿐이었지만, 왠지 모를 책임감이 생겼다. 이름 뒤에 멋진 00 팀장님이라는 직함도 생기다니, 프리랜서로만 일하던 나에게 임시로 주어진 이 직함이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르겠다. 봉사도 하면서 그럴싸한 직함도 가지게 되니, 알 수 없는 행복감이 밀려왔다.




하지만 책임감과 함께 찾아온 부담감이 나를 꽤 힘들게 했다. 잘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도 함께. 아이들을 돕기 위해 시작한 좋은 동기가 부담감과 압박감으로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이런저런 일들로 바쁘고 힘든 와중에 이게 뭐라고, 잠도 못 자고 이래야 하나 한탄도 했다. 예전만큼 열정을 따라가지 못하는 몸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불규칙한 수면과 식습관 상태로 몸도 붓기 시작했고 잘 나가던 운동도 빠지니 몸상태는 더욱더 나빠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나의 쓰임 찾기는 과욕이 아니었나 하는 후회가 들면서 하루에도 수십 번 '하고 싶지 않아'를 속으로 돼 내었다.


그러나 그 모든 부담감, 압박감, 후회감은 행사 당일에 저 멀리 사라졌다. 모두가 함께 했던 준비가 멋진 결과로 세상에 선보이자 후련함이 그동안 답답했던 마음속을 뻥 뚫리게 해 주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함께 해낸 팀원들이 서로의 힘듦을 공감해 주며 위로해 주니 혼자서 끙끙대던 시간들을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그동안 애썼던 결과물들을 보면서 한 달 반 동안 이름 뒤에 달렸던 팀장이라는 직함이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적어도 이 사회에서 아직은 내가 쓰임이 있는 사람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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