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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지희 Dec 12. 2019

'카페 레슬리',
오롯하게 장국영을 기억하는 공간

나의 레슬리 ep20 : 카페 레슬리의 주인장, 최유영 님의 레슬리

장국영의 팬이 된 지 올해로 30년. 이 엄청난 사건을 스스로 기념하겠다며, 그 누구의 레슬리가 아닌 ‘내가 사랑한 나의’ 레슬리에 대한 19편의 글을 세상에 내보냈다. 감사하게도 나의 추억을 자신의 추억 인양 반갑게 맞아주신 분들 덕분에 잊고 있던 기억들을 하나씩 하나씩 끄집어내고 있는 요즘.

 

그런데 글을 읽고 남겨주시는 댓글을 읽다 보면 ‘나의 레슬리’와 ‘당신의 레슬리’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레슬리는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우리 모두의 레슬리’였음을 통감하는 한편, 다른 분들의 레슬리가 더더욱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당신의 레슬리’라는 제목으로 여전히 장국영을 사랑하며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팬들을 만나보기로 했다. 얼마나 많은 팬들을 만날 수 있을지, 얼마나 자주 업데이트할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지만.. 



사실 이 아이디어에 불을 지핀 것은 11월에 인스타그램에서 우연히 발견한 한 카페였다. 장국영의 이름을 딴 ‘카페 레슬리’라는 공간. 

이름뿐만 아니라 공간 자체가 레슬리로 꾸며진 이곳을 보면서 나는 팬들의 로망이 집약된 장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팬이라면 한 번쯤은 꿈꾸어 보았을 상상을, 상상에 그치지 않고 현실로 만들어낸 분은 대체 어떤 사람일까. 그리고 그의 레슬리는 또 어떠한 모습일까. 

그리하여 나는 카페 레슬리의 주인장인 최유영 님과 만나기로 하고 카페가 위치한 삼송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레슬리에 대한 수다 만으로 시간의 흐름이 멈춰버린 것 같았던 곳




꿈이 이루어진 공간


삼송의 조용한 주택가 한 켠에 위치한 카페는 밖에서 들여다보아도 매우 아늑해 보였다. 슬그머니 문을 열고 들어가 주문을 한 후, 마침 아무도 없는 시간이라 커피가 내려지는 동안에 카페를 둘러보았다.

과연, 카페 레슬리라는 이름처럼 공간 곳곳이 장국영으로 채워져 있었다. 인스타그램으로 익히 보았던 레슬리의 얼굴을 그린 그림이며, 사진, 영상집을 하나씩 찬찬히 들여다본다.



아, 부러우면 지는 건데..


부럽다. 그것도 아주 많이.



공간을 둘러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카페에 흐르는 노래를 흥얼흥얼 따라 부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노래는 <這些年來>였다. 그 순간의 내 기분과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곡이었다.

아 뭐지, 이 찰떡같은 궁합은.


그런데 이 곳, 들여다볼수록 팬들 만이 알아볼 수 있는 스웩이 넘치는 공간이다. 비닐도 벗기지 않은 24K 앨범 다섯 장이 스피커 위에 툭 하니 무심하게 올려져있지 않나(누가 홀랑 집어가면 어쩌시려고!), 오래된 카세트테이프들이 옹기종기 놓여 있기도 하고, 빙글빙글 장국영의 액자로 만들어진 카루셀도 있었다.

한눈에 보아도 하루 이틀 모은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는 자료들을 보며 예상했던대로 내공만땅의 오랜 팬임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살금살금 내 곁을 맴도는 꽁순이라는 이름의 블랙 토이푸들 조차도 레슬리의 영상집에 등장했던 강아지를 떠올리게 한다. 내가 '장국영 월드'에 왔나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레슬리를 주제로 꾸며진 카페는 유영님의 오랜 꿈이었다고 한다. 그녀는 별 것 아닌 것처럼 쿨하게 이야기했지만 다들 생각만 할 뿐, 카페라는 것이 어디 실행에 옮기기 쉬운 일이던가.

언니와 함께 카페를 열어 먼저 경험을 쌓고, 학원을 다니며 카페 메뉴들을 익히고, 공간을 가득 채울 장국영의 자료들을 모으고.. 이 일련의 일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기에 그녀가 더욱더 멋져 보였다.


공간을 함께 꾸민 것은 유영님의 남편이라고 한다. 

처음 함께 이 공간을 꾸밀 적에는 "우리집에 이런 것도 있었냐"며 놀라던 그는, 이제 그녀보다 더 레슬리의 굿즈들에 욕심을 내며 "너는 이런 것도 없니?"라는 예상치 못한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고. 


세상에 팬질을 이렇게나 적극적으로 지지해주는 남편이 있다니! 

알고보니 남편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본인도 장국영을 좋아한다며 그녀의 환심을 샀단다. 지금은 그때 내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며 볼멘소리를 하기도 한다지만, 그래도 카페 안쪽에 꾸며진 일명 '국영 오빠의 방'도 남편의 아이디어였다며 웃는 그녀의 얼굴이 무척 행복해 보인다.

이렇듯 '카페 레슬리'는 레슬리의 이름을 딴 카페를 여는 것이 꿈이었던 유영님과, 강아지를 키우는 것이 꿈이었던 그녀의 남편이 서로의 꿈을 현실로 이루어낸 공간이다.



아무리 빙글빙글 돌려도 모두가 레슬리! 괜히 몇 바퀴씩 돌려보았던 카루셀



오해로 시작된 입덕


"예전에 신동엽이 나오는 예능 프로그램이 있었어요. 유명한 영화를 패러디하는 콩트 프로그램이었는데, 어느 날 그림을 훔치는 스토리가 나왔어요. 흥미진진하게 보고 있는데 옆에 있던 언니가 “저거 주윤발이랑 장국영이 나왔던 중국 영화랑 내용이 똑같은데?”라고 말하더라고요. 그런데 언니는 제목이 네 글자였다는 것만 기억하더라구요. 그래서 영화광이었던 친구에게 물어봤죠. 주윤발과 장국영이 함께 나온 네 글자 제목의 영화가 뭐냐고." 



그 질문에 친구가 알려준 제목은 <영웅본색>이었다.


때는 중학생이었던 1995년이었다. 찾던 영화가 아니었음에도 <영웅본색>을 보며 우는 그녀을 보곤 오빠가 말했단다. 2편은 1편보다 훨씬 더 슬픈데 벌써부터 그렇게 울면 어떻게 하느냐고. 덕분에 그 오빠는 고등학생 이상 관람가였던 2편을 대여해달라는 여동생의 성화에 시달려야 했고, 여동생은 그 노력이 아깝지 않게 영화에 푹 빠져들어 이내 장국영의 열성 팬이 되었다.


그리고는 홍콩영화 마니아를 아버지로 둔 다른 친구에게 물어서 원래 궁금했던 영화도 찾아보았단다. 모두 다 눈치채고 있겠지만, 애초에 그녀가 찾았던 영화는 <종횡사해>였다. 

하지만 모든 길은 로마로 향하듯 그 시작이 <영웅본색>이었든 <종횡사해>였든 그녀가 장국영의 팬이 되었을 것이라는 결론에는 변함이 없지 않았을까.



그렇게 그녀가 입덕을 한 때는 마침 <총애 장국영>이 발매되었을 무렵이었다. 

그녀가 그 앨범을 구입했던 레코드 가게에는 포스터가 딱 두 장 들어왔었다고 한다. 한 장은 이미 누군가가 가져갔고, 남은 한 장은 레코드 가게에 걸려있던 상황. "이 포스터를 떼어내게 되면 그때 널 주겠다"는 주인의 말에 그녀는 매주 레코드 가게를 찾아서 "그래서 포스터 언제 떼실 건데요?"라며 닦달을 했다고.


재미있는 것은 그녀와 내가 같은 중학교를 나왔다는 것이다. 최유영 님 역시, 영화 <우연>을 중학생들에게 단체관람시켰던 '문제적' 학교의 동문이었다. 새삼스레 세상이 참 좁다고 느끼는 순간이었다.

비록 나이 차이가 애매하게 나는 바람에 함께 중학교를 다니지는 못했지만, 그녀가 중학생일 때 나는 같은 재단의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었을 테니 아마도 어디선가 한 번쯤은 스쳤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녀가 주인을 닦달했다던 레코드 가게에서 나 역시 장국영의 앨범을 여러 장 구입했었으니.




내 방을 이렇게 온통 장국영으로 꾸며놓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때가 있었다.



여전히 나는 그 자리에 있지만, 


"국영 오빠를 생각하면, 늘 그 시절의 제가 대입 되고는 해요. 이 작품이 나왔을 때 나는 몇 살이었고 어디에서 뭐를 하고 있었지.. 하고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거죠. 그런데 지금은.. 여전히 저는 이 자리에 있는데, 더는 오빠와 연결 지어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없어요. 그게 가장 슬퍼요."



가수로 컴백하던 즈음에 팬이 된 덕분에 은퇴 시기에 다른 팬들이 겪었을 법한 상실감을 겪지는 않았지만, 거꾸로 장국영을 두고 꾸었던 수많은 꿈들을 채 펼쳐보기도 전에 그가 세상을 떠났다며 아쉬운 얼굴을 하는 그녀.


영화 <금지옥엽 2>의 홍보를 위해 내한했을 당시에 무대인사에서 본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고 한다. 장국영을 만나려면 꼭 홍콩에 가야만 하는 줄 알았기에 그 일념으로 중국어도 배웠건만, 그녀가 이제 막 스스로 돈을 벌어 홍콩행을 꿈꾸어 보려던 찰나에 레슬리는 세상을 떠났다.

만우절에 전화로 그의 소식을 알리는 친구에게 "세상에는 해도 되는 거짓말이 있고, 해서는 안 되는 거짓말이 있다"며 정색을 했지만, "네이버를 찾아보라"는 친구의 대답에 접속한 웹사이트에서 그 밤 내내 새로고침만 반복했다고.


하지만 더 슬픈 것은 이제 곧 그가 세상을 떠났던 나이를 뛰어넘게 된다는 것이다. 처음 보는 새로운 사진도 없고, 새로운 음악도 영화도 없는 것만도 속상한데.. 얼마 후면 한때 친구들에게 '아빠 뻘을 좋아한다', '우리 아빠도 56년생인데' 하는 놀림을 받았던 그의 나이를 뛰어넘게 될 것이다.


이 이야기를 하며 눈가에 눈물이 맺혔던 그녀는 이내 다시 웃으며 말한다.


"저 원래는 눈팅만 하던 사람이었어요. 영상회를 해도 영상만 보고 슬그머니 나오곤 해서, 아는 사람도 많지 않은데 요새는 찾아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행복해요. 분들과 국영 오빠에 대해서 이야기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겠어요."



그랬다. 나 역시 그녀와 시간이 흐르는 줄 모르고 울고 웃으며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게를 닫을 때가 거의 다 되어서야 일어나면서 카페를 다시 한번 둘러본다. 그리곤 문을 열고 나오며 어느새 어두워진 하늘에 대고 혼잣말을 했다.


"국팔씨는 참 좋겠다. 이런 팬도 있고. 그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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