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어린 엄마

노들섬에서 만나요 : 1월의 글세

by 장지희

어린 시절 기억 속의 엄마는 못하는 것이 없는 사람이었다.

엄마는 살림은 물론이고 다른 집에서는 대개 아버지의 영역으로 여겨지는 일들도 아무렇지 않게 해내는 사람이었다. 못질도 잘하고, 라디오 같은 전자제품이 말썽을 부려도 어떻게든 잘 돌아가게 만들어주곤 했었다.


엄마는 정말로 못하는 것이 없구나 확실하게 느꼈던 것은 할아버지와 엄마 나 셋이 머리를 맞대고 앉아 씨레이션(C-Rations)을 까먹을 때였다. 미군부대에 친한 친구가 있었던 아빠는 전투식량인 씨레이션을 정기적으로 몇 박스씩 얻어오곤 했는데, 아빠와 할머니가 일하러 나가면 남은 세 식구가 모여 앉아 그 상자들을 하나씩 열어서 음식들을 맛보곤 했다. 이 씨레이션 상자에는 정말이지 없는 것이 없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애피타이저부터 디저트, 커피까지 꽤 알찬 구성이었다.


나는 그 마법의 상자를 통해 세상에는 달지 않고 짠 과자도 있다는 것을 처음 배웠고 (물론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왕소금이 콕콕 박혀있는 과자를 먹었다고 했다가 한동안 거짓말쟁이 취급을 받긴 했다), 새콤 고소한 베이크드 빈스의 맛도, 스테이크의 맛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정말 신기했던 것은 엄마가 봉투만 보고도 그 안에 무슨 음식이 들어 있는지 턱턱 맞춘다는 점이었다. 어린 내 눈에는 각기 사이즈만 다를 뿐, 모두 국방색 봉투일 뿐이었는데. 슈퍼에서 파는 음식들처럼 봉투에 그 음식의 그림이 떡하니 그려져 있지도 않았는데. 그래서 봉투 아래에 적힌 알 수 없는 글자만 읽고도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정확히 알아맞히는 엄마가 내 눈에는 그 어느 때보다도 멋져 보였다. 기대를 하며 봉투를 열었을 때 엄마가 예언했던 그 음식이 모습을 드러낼 때의 전율이란!




하지만 그렇게 완벽해 보이는 엄마를 이해할 수 없던 순간도 많았다. 어린 마음에도 ‘엄마는 어른인데 왜 저렇게 행동을 할까’ 싶은 장면이 몇 있는데, 자세한 정황이야 잘 기억나지 않지만 당시의 황당하고 어이없고 억울했던 감정만큼은 생생한 것을 보면 아마도 내 잘못도 아닌데 혼이 났다거나 하는 일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 중에서 가장 강렬하게 남아있는 기억은 네다섯 살 무렵에 살았다는 자양동 집에서의 한 장면이다. 그 집은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안방과 건넌방, 주방이 나누어져 있는 KBS 주말드라마에 등장할 법한 양옥집이었는데, 엄마의 손에 잡혀서 꽤 넓었던 것으로 기억되는 그 대청마루를 질질 끌려가며 손이 발이 되게 빌었던 장면이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짐짝처럼 끌려가서 맞았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잘못했어요, 용서해주세요, 빌면서 서럽게 울었던 겉모습과 다르게 속으로는 근데 내가 도대체 뭘 잘 못 한 거지? 엄마는 왜 저렇게 화가 난거지? 하는 생각이 오갔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날은 내 인생에서 가장 크게 혼났던 날 중 하나로 기억이 되는데, 하도 그 기억이 생생해서 언젠가는 대체 내가 뭘 잘 못 했는지 기억이 나느냐고 물었더니 엄마는 세상 쿨내 나는 답을 내놓았다.


“아마 느이 할머니 때문이었겠지.

내가 나도 모르는 새에 시집살이 스트레스를 너한테 많이 풀었었어.

그래서 때려놓고 미안해서 울고 그랬었지.

그때는 엄마도 젊었을 때라 화를 잘 주체 못 했어”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허무함과 함께 분노가 몰려왔다. 그게 내 잘못이 아니었다고? 하는 배신감이 반,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른이 애한테 화풀이를 하냐 하는 원망이 반이었다. 아무리 젊어도 그렇지 무슨 부모가 그러냐고 따지려다가 당시 엄마가 몇 살이었는지를 헤아려 보았다. 아마도 서른두세 살쯤, 이라고 암산을 해놓고 나니 순간 아득해졌다. 그때의 엄마가 지금의 나보다 어렸던 것이다, 그것도 훨씬.

내가 온 우주처럼 여겼던 엄마의 나이가, 지금 내가 사회에서 만난다면 “그래, 니가 지금 뭘 알겠니” 치부해버리는 나이였다니. 나도 어렸지만, 엄마 역시 어렸던 시절이었던 것이다.




그 해부터 서른둘, 엄마의 서른셋.. 그렇게 한 해 한 해를 세어 엄마가 지금의 내 나이를 살았을 해를 되짚어보았다. 마흔 하고도 넷, 아마도 내가 중학교 3학년 때였을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늘 아침 밥상과 학교에 가져갈 도시락이 준비되어있고, 늘 깨끗하게 세탁한 교복이 준비되어 있었던 시절. 집으로 돌아오면 간식과 저녁식사와 따뜻한 잠자리가 기다리고 있었던 시절.


하지만 태어나서 처음으로 엄마의 눈으로 다시 들여다본 그 시절은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극성맞은 시어머니에 무심한 남편, 늦둥이 막내아들에 손 많이 가는 사춘기 딸. 온통 엄마의 관심과 케어를 바라는 사람들 뿐, 엄마에게 관심을 주는 사람이 없었다.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은 집안 살림은 끝이 없었을 것이고, 거기다 그즈음의 나는 일기장에 집을 나가버리겠다는 둥 위험한 상상을 글로 남기곤 해서 부모님이 예의 주시하던 아이였다.

지금의 나는 나 하나의 인생도 버거워서 허덕거리며 사는데, 같은 나이에 책임을 져야 할 자식과 시부모라니. 늘 사는 것이 힘들다며 징징거리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문득 사진첩을 꺼내어 그때의 엄마를 찾아보았다. 당시에는 엄마를 ‘나이 많은 아줌마’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 그때의 엄마는 날씬하고 해사하고 예뻤다. 집에서 살림이나 하고 있었다는 것이 아까울 정도로. 하지만 그러면서도 지금의 나보다 훨씬 더 어른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아마도 무언가를 온전히 책임지고 있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얼굴일 것이다.

한참 동안 사진을 들여다보다가 사진첩을 덮으며 곰곰이 생각해본다.


과거의 엄마와 같은 나이를 살고 있는 지금의 나는 과연, 어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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